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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삶에 감사를

등록 2014-12-18 18:36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시와 노래가 가득한 가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음악교사였고 농부 어머니는 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다. 비올레타 파라는 재능을 알아챈 시인 오빠의 격려를 받으며 남매들과 함께 가수로 나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 무대에 섰다.

그가 부르던 노래는 당시 칠레에 유행하던 미국풍 대중음악이 아니었다. 그는 오빠의 친구 파블로 네루다의 조언을 받은 뒤 농촌에서 민중가요를 채보해 민속 음악의 원형을 살리며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선율로 만들었다. 식민지를 지배하던 에스파냐 교회와 정부는 안데스 원주민의 음악과 악기를 ‘악마의 소리’로 규정했고 보수 정부는 그 전통을 이었다. 따라서 그의 노래는 유장한 산천을 읊어도 저항의 말이요, 몸짓이었다.

점차 그는 노래를 통해 사회 정의를 밝히려는 의도를 명백히 해,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을 비판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연대를 강조했다. 보수 정권의 탄압은 칠레의 노래를 유랑의 길에 오르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 나라의 누에바 칸시온, 즉 ‘새 노래’가 더 풍요로운 음악성을 얻으며 세계로 퍼질 기회가 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은 ‘삶에 감사를’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와 조앤 바에즈의 목소리로 유명해진 이 노래는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 소리, 터빈 소리, 개 짖는 소리, 빗소리” 같은 평범한 삶의 소리를 듣게 해주는 ‘귀’에 감사한다. 일상의 소소한 슬픔과 행복이 “나와 여러분의 노래”가 되었다는 노랫말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찬미로 들린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연인이자 동지로 살아왔던 사람과 이별한 뒤 주체 못할 슬픔을 내면화시킨 결과였음을 알게 될 때 이 노래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가슴을 파고든다.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당신의 맑은 눈 깊은 곳을 응시할 때 내 심장을 온통 뒤흔드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파라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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