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가 부활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각하’라 한 이후의 일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에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른 것’이란 해명이 이어졌다. 폐하(황제)-전하(왕)-저하(왕세자/황태손)-합하(정일품/대원군)-각하(정승/왕세손)의 호칭 서열에 따르면 ‘각하는 하급 경칭이니 오히려 대통령의 격을 깎아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50대 이후에게 ‘각하’는 특정 대통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남아 있지만, 사전 속 ‘각하’는 ‘특정한 고급 관료에 대한 경칭’일 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각하는 대통령에게만 쓸 수 있다’는 문구를 기억한다. 1970년대 학교 게시판에서 본 ‘국가원수에 대한 예절’의 하나이다. “총무처에서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각하’라고 붙여서 부르기로 결정했다”(1966년 3월, ㄷ일보)는 기록을 보면, ‘각하=대통령’이란 인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총리, 장관은 물론 군 고위 장교에게도 ‘각하’라 하던 경칭 문화를 대통령에게로 한정한 것이다. ‘각하’와 더불어 쓰임이 좁아진 표현이 ‘영부인’과 ‘영식’, ‘영애’이다. ‘남의 부인(딸/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영애/영식)’이 특정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 것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원래 말뜻을 살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이웃, 옆집 아저씨의 아내가 영부인이고 그 집 딸과 아들은 영애와 영식이다. 뒷집 아줌마가 ‘영식은 잘 지내지요?’ 인사하면 ‘그 댁 영애도 많이 컸던데요!’로 답하면 된다. 행정기관을 찾아간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국장 각하께 잘 부탁한다고 전해 주셔요’ 해도 ‘국가원수 모독죄’를 덮어씌우지 않는다. ‘부대 생활 돌봐 주셔 고맙다’는 편지를 ‘사단장 각하’에게 보내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많아지는 것도 괜찮겠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따따부따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 아닌가.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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