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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프랑스의 랑법과 문화적 다양성 / 다니엘 올리비에

등록 2014-12-22 18:51

다니엘 올리비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장
다니엘 올리비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장
2005년 10월20일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을 채택했다. 회원국들은 문화를 “일반 상품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표명하며, “그 영토 내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조치 및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당사국 원리를 다시 한번 명시했다.

협약 비준국 가운데 프랑스는 문화적 다양성 보호의 측면에서 전세계적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들을 규정짓기 위해 사용된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라는 표현은 지금은 다수의 합의에 의해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사용되고 있다.

랑법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이 1981년 10월10일 공포했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려는 프랑스의 의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한 예다. 랑법에 의해 프랑스에서 도서정가제가 처음 법제화되었고, 이는 도서의 소비자가격 경쟁을 제한해 관련 산업을 보호함과 동시에 독서를 증진시키고 독립 서점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서점의 공급 다양성을 보장한다.

도서정가제가 프랑스에서만 있지는 않다. 일찍이 영국의 출판업자들은 1892년 소매서적상들의 과도한 할인에 대처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도입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를 폐지했다. 유럽에서 태어난 이 법은 결국 도서의 제작과 배포라는 서로 다른 두 기능이 분리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2011년 한꺼번에 13개 나라(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도서정가제가 채택되었다. 브라질과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현재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유럽의회가 도서정가제의 근본적 취지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시장 개입에 대해선 자제를 권고하고 있음에도, 도서정가제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그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은 도서정가제에 대해 자유시장의 경쟁 논리에 모순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결국 각국의 도서정가제가 표방하는 목적은 전문 소매서적상, 그중에서도 도서 판매로만 유일하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영세 서적상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매상들이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이 양질의 다양한 도서 공급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 주제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견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지만, 랑법이 도서 가격 할인을 제지하고 자본의 힘이 아닌 다른 간접수단을 통해 서적 소매상들이 경쟁 관계에 놓이지 않도록 규제하면서, 30년 이상 독립 서적상들을 보호해 온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샌드위치를 사는 것만큼이나 인터넷을 통해 책이나 디브이디(DVD)를 구입하는 것이 쉬운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법은 지식과 문화의 전체화를 촉진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 수단 중 하나로 보인다.

책은 다른 일반 상품과 똑같이 취급될 수 없고 문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상업제품과 비교될 수 없다. 따라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급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개별적인 법으로 보호받는 대상이어야 한다.

2003년 도서정가제를 법제화했던 대한민국은 지난달 21일부터 도서정가제의 취지가 조금 더 강화된 개정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새로운 규정은 발전적이며 다양한 문제 제기들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또한 일시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문화적 공공재로서의 책을 가치로 평가함으로써 결국 한국 국민과 책을 더욱 가깝게 하고 더 나아가 문화융성 실현에 일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니엘 올리비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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