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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올레와 비슷한 인생길 / 권혁철

등록 2014-12-30 18:42수정 2014-12-30 22:25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나는 지난주 나흘 동안 제주 올레를 혼자 걸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도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대개 “팔자 좋네. 부럽다”는 첫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에게 내 제주 일정을 이야기해주면 “왜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그 고생 하며 걷느냐?”고 궁금해한다.

지난주 나는 몸이 휘청일 정도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매일 25㎞가량 걸었다. 제주의 겨울바람은 ‘할퀸다’고 표현할 정도로 모질었다. 인적이 드문 중산간(산지와 해안지대의 중간에 있는 지역)을 주로 다녀 식당을 찾기 힘들었다. 바람을 피해 돌담 밑에 앉아 생수와 비스킷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나는 2009년부터 올레를 걷기 시작해, 모두 6차례 올레를 걸었다. 사람들은 “비행기 삯 내고 올레를 걷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내가 올레를 찾는 이유는 올레가 인생의 길과 여러모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올레 걷기의 첫 단계는 짐 줄이기다. 나는 제주로 출발하기 전 배낭에서 짐을 꺼내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세번씩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최대한 줄인다고 짐을 줄였지만, 올레를 걸을수록 배낭 무게가 바윗덩어리 같다. 결국 꼭 필요한 물건만 빼곤 소포로 집에 짐을 부치곤 한다.

배낭의 짐을 줄이면서 내가 짊어지고 다녀야 할 인생의 무게는 얼마일까 생각하게 된다. 덜어내도 될 인생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평생 낑낑거리고 사는 게 아닐까. 더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고 믿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 덜어내기는 쉽지 않다. 나는 올레를 걸으며 욕망을 줄이는 연습을 한다.

올레에서는 여간해서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제주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감귤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리본이 곳곳에서 꼼꼼하게 길을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잡념에 빠진 채 정신없이 걷다 자주 길을 잃었다. 올레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마지막 리본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찬찬히 주변을 살피면 길 안내 리본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인생의 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을 살다 ‘뭔가 잘못됐다’ 싶은 생각이 들면 올레를 걸을 때처럼 바로 잘못되기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잘못된 길을 계속 걸어간다. 그러다가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리면, 잘못 들어선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가게 된다.

‘올레에서 뭐가 제일 좋으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나는 제주 돌담이라고 답한다. 올레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시커먼 현무암으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돌담이 있다. 나는 제주 바람이 모진데도 돌담이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현무암 특성상 돌의 거친 부분들이 서로 엉켜 붙고 돌과 돌 사이 빈틈으로 거센 바람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돌들이 연대하고 틈을 비워서 돌담이 좀처럼 쓰러지는 일은 없다.

바람 한자락 스며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쌓아올린 콘크리트 담과 달리 제주 돌담은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다. 저항하기는커녕 돌담은 바람을 틈새로 받아들였다. 인생의 길에서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과 연대하고 나를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번 올레 걷기를 마칠 때는 여행이 끝났다는 섭섭함과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쳐간 길인데 길의 끝이야 아무러하면 어떤가.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고 말했다. 나는 걷는 것은 자신과 대화하며 그동안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제주 올레든 동네 공원이든 길 위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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