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스포츠부장
3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은 두 명의 현직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보기 드문 대회가 될 것 같다. 2018년 2월9일 개막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개회선언을 한다. 하지만 25일 열리는 폐막식은 새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외부 공식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폐막식 전날인 24일 끝나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 일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말이다. 분명한 건 박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의 개최에만 행정부 수반으로서 책임을 질 뿐, 올림픽 ‘사후 정산’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난달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분산 개최 제안을 “의미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버렸다. “경기장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평창올림픽이 지금처럼 단독 개최를 겨냥해 준비된다면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는 불가피하다. 2011년 유치 당시 9조원 규모로 예상된 평창올림픽 예산은 현재 13조원으로 불어났다.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비 등을 고려하면 15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분산 개최를 반대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강원도도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할 뿐 적자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의 분산 개최 논의 일축은 무책임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분산 개최 종목으로 썰매 종목(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을 콕 집어 제안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썰매 종목은 경기장 건설비(약 1300억원)가 가장 많이 들면서도 사후활용이 가장 어렵다. 사후활용은 평창조직위도 언급한 대로 각종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봅슬레이 썰매를 항공기로 운반하는 데만 대당 5000만원이 든다. 올림픽이 아니라면 썰매 강국인 북유럽 선수들이 육로 운반이 가능한 유럽 대회를 놔두고 굳이 비싼 돈 들여 평창까지 올 이유가 없다. 이미 겨울올림픽(1998년)을 치른 일본 나가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가노의 썰매경기장은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대회를 유치하지 못하면서도 경기장 유지비용만 연간 50억원을 써야 한다. 2006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한 이탈리아 토리노는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썰매경기장을 아예 철거해버렸다.
국민 정서상 일본과 분산 개최가 어렵다면 전북 무주나 서울의 시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서울 태릉과 목동의 아이스링크를 조금만 손보면 현재 강릉에 17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남녀 아이스하키장을 대체할 수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리모델링 비용은 새 경기장 공사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1997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른 무주의 활강 스키장은 환경파괴 논란까지 빚고 있는 가리왕산 중봉 스키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터파기 수준에 불과한 경기장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는 주장은 매몰비용(sunk cost)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투입된 비용을 회수할 수 없으면 추가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면 나중에 경기장을 해체하겠다”(최문순 강원지사)는 말은 무책임의 극치다.
평창은 4대강을 닮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안하무인으로 22조원을 낭비한 4대강 사업은 빚더미와 함께 환경파괴라는 무거운 짐을 후대에 떠안기게 됐다. 사회 각계각층의 반대 의견을 묵살한 결과다. 평창은 4대강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 뒤치다꺼리하기에 우린 너무 지쳤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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