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티브이

등록 2015-01-05 18:40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을 볼 수 있는 눈, 즉 천리안은 신과 그 대리인에게만 허용된 눈이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신의 권능을 빼앗아 인간에게 주는 것이 신의 은총을 받는 길이라는 아이러니한 신념의 시대를 열었다. 인간에게 천리안을 선사하기만 하면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하에, 많은 과학기술자들과 기업들이 움직이는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송하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1931년, 브라운관 티브이 시험방송이 행해졌고, 본격적인 방송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 개회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티브이 방송의 역사는 HLKZ-TV가 이틀에 한번, 하루 두시간씩 티브이 전파를 송출하기 시작한 1956년 5월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 보급된 티브이 수상기는 300대 남짓이어서 방송국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57년, 장기영이 이 방송국을 인수하여 대한방송주식회사를 설립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1961년에는 다시 국립 서울 텔레비전 방송국(현 KBS)에 양도했다.

살림살이가 어지간한 사람들이 티브이 방송에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1966년 금성사가 티브이 수상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뒤였다. 당시 가격은 6만8350원으로 쌀 30가마니 값에 상당했다. 이 물건은 집 안에 들어온 즉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온 가족의 시선을 독점했다. 이 물건으로 인해 가족이 모여 앉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대신 대화의 소재는 제약되었다.

티브이 수상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바보상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기 주치의가 하는 말은 안 믿으면서도 티브이 방송 출연자가 하는 말은 맹신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 별명은 매우 적절했다. 그럴수록 티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의 욕망도 커졌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준 탓에 바위에 묶인 채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신의 눈을 얻은 현대인은, 매일 바보가 되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가벼운 벌만 받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