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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겨울 홍합탕

등록 2015-01-07 18:55수정 2015-01-07 22:40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이십대 중반 무렵 저 까마득한 남쪽 섬 관매도에서 한달 정도 섬처녀로 산 적이 있다. 삶이 버거웠고 극에서 극으로 나를 내모느라 너무나 고단하던 그때,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들어간 그 섬에서 나는 뜻밖에 평화로울 수 있었다. 머물던 집의 할머니가 뻘밭에서 조개를 캐는 동안, 나는 갯바위에서 홍합을 땄다. 뻘밭에 들어가는 건 엄두도 나지 않거니와 외지 처녀에게 허락될 일도 아니어서 나는 홍합을 따러 자주 갯바위를 돌아다녔고 저녁엔 할머니와 앉아 홍합탕에 정종을 곁들이곤 했다. 그때 할머니가 내게 가르쳤다. “이게 왜 맛있는 줄 아나. 물맛이다.”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홍합은 물만 먹는다. 바닷물이 몸을 통과하기를 거듭하며 홍합을 살찌우는 것이니 홍합의 살맛은 곧 홍합이 자란 그곳의 물맛일 수밖에! 바닷물의 상태가 홍합에 그대로 새겨지는 것이니 살아 있는 바다와 죽은 바다가 기르는 홍합의 맛은 당연히 다르다. 나의 홍합탕 사랑은 진눈깨비 내리는 겨울밤 포장마차에서 먹던 삼십 중반까지가 최고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홍합탕을 찾지 않게 되었다. 조미료 없이도 맛난 것이 홍합탕이건만 밖에서 사먹는 대개의 홍합탕이 조미료 맛인데다 홍합의 맛도 예전 같지 않다. 물이 나빠지고 있는 거다. 바닷물이 갈수록 생명 없는 물로 변하는 중이니 이런 물을 먹고 홍합이 어떻게 예전처럼 향기로운 살을 기르겠나.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며 달려가는 대개의 사람살이가 이러니 어찌할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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