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서울의 용산은 몽골군 침략 이래 외세에 의해 반복적으로 점유되어온 민족의 오랜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식민지 군사기지로 시작하여 수도 한복판의 치외법권 지대가 된 지도 100년이 지났다. 그러한 용산기지 터가 2016년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오욕의 역사를 치유하면서 21세기 수도 서울의 미래를 열 새로운 역사공간이 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민족 자존심을 회복해야 하는 국민적 명령을 실천하는 국가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하지만 그간의 준비과정이나 조성계획은 국민적 염원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직접 조성·관리한다는 것 말고는 과연 무엇이 국가공원답게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국가공원이란 이유로 정부 주도로 공원의 성격과 조성 방식이 결정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민족 자존감을 회복하는 주체적 공간이 되어야 하지만 공원 터에는 미국대사관, 헬기장, 드래곤힐호텔 등 미군이 쓰는 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국가공원이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비운의 국가공원’이 될 모양새다.
최근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가 변경·결정한 용산공원종합기본계획은 더욱 우리를 실망스럽게 한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시민사회의 관점을 우선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결정 자체도 정부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것에 불과했다. 그 결과 보고서 분량이 애초 243쪽에서 71쪽으로 줄면서 공원 조성의 근거가 되는 주요 내용이 대폭 삭제되었다. 미군 등의 사용 부지 확대로 인한 공원 면적 축소는 서울시의 문제제기로 저지되었다. 한미연합사 등 잔류 부대에 대해선 도면상 구획만 표시한 채 공원 조성을 3단계(2025~27)로 미뤄 놓았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가 ‘2020년대 중반 이후’로 되어 있어 한미연합사가 실제 언제 이전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태로 온전한 국가공원이 될 수 있을지를 위원회가 국민을 대표해 치열하게 다투어봐야 했다.
용산기지 터 반환으로 서울의 지리적 중심부가 바야흐로 열리게 되었다. 용산공원 조성과 연동해서 주변 일대에 21세기 서울을 이끌 미래지향적 중심 기능이 자리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용산공원을 국가공원답게 하기 위해 필요하고, 또한 국가공원을 중심으로 서울의 새 중심부를 조성하여 수도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원 주변, 특히 기회의 땅인 ‘산재부지’(유엔사·수송부·캠프킴)의 사용과 처분은 서울시의 도시계획고권이 전혀 미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변경된 기본계획은 이를 더욱 강화했다. 국제교류 기능 관련 구체적 용도, 남산 7부 능선 조망, 주택 비중 및 관계기관 협의 이행 등의 내용이 대폭 빠졌다. 유엔사·수송부 터는 아예 평택기지 이전비용 확보를 전제로 용적률 등을 협의하도록 해놓았다. 캠프킴 터는 최고 높이를 210m까지 해놓아 조망권 침해 문제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수송부 터는 오피스텔까지 포함할 경우 89.5%가 주거용으로 채워져 그곳을 서울의 국제교류거점으로 만들 수 없도록 해놓았다.
미국과의 권력적 비대칭성, 국가 주도의 공원 성격규정과 추진방식, 특별법이란 이유로 서울시 계획고권의 제한, 시민사회의 배제, 이전비용 조달 위한 산재부지의 개발규모 산정 등의 조건을 가지고 온전한 국가공원 조성이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나서 대등한 한-미 관계 속에서 이전비용을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잔류 부대를 최대한 이전시키며, 주변지역에 대한 서울시 계획권한을 돌려주고,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절차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용산기지 반환과 생태공원 조성 요구는 1996년 시민사회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시민이 조성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국가공원은 ‘정부의 공원’일 뿐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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