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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냉장고

등록 2015-01-12 18:56


성체(成體)가 되어 매일 제 먹이를 스스로 구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포유류는 아주 드물다. 그런 동물들은 몸에 영양분을 저장해 두거나 소굴에 먹이를 저장해 두는 습성을 타고난 것들이다. 인간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로 재탄생한 것은, 이런 저장 습성을 가진 동물들에게 배운 덕이다. 그런 점에서 저장 도구, 즉 그릇은 문명 탄생의 표상이자 금단의 열매였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음식물이 많지 않은 게 문제였다. 인류는 쉬 부패하지 않는 곡물을 주식으로 삼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곡물들에 별맛이 없다는 점도, 인간이 먹이를 두고 새와 다퉈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점도, 저장의 장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인류는 구석기 시대에 사냥과 채집을 통해 얻은 입맛을 잊지 못했다. 쉬 부패하는 음식물을 장기 저장하기 위해 다른 방법들이 필요했고, 필요는 발명을 낳았다.

건조, 훈증, 염장, 발효 등 장기 저장을 위한 여러 방법들이 발명되었으나, 이런 방식으로 저장하면 본래의 맛과는 달라졌다. 음식의 맛과 신선도를 그럭저럭 유지하면서 저장하는 방법으로는 냉장이 가장 좋았지만. 겨울이 아닌 계절에 이 방법을 쓰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얼음을 이용하는 가정용 목제 냉장고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대한제국 시기로 추정된다. 고종은 이런 냉장고를 이용해 여름에도 냉면을 먹었다. 가정용 전기냉장고는 1926년 미국에서 처음 발명되었고, 1930년께부터는 식민지 조선 최상층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물건은 1970년대 말부터 각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식탁에는 싱싱한 미국산 쇠고기, 칠레산 포도, 노르웨이산 연어 따위가 올라온다. 18세기 프랑스인 브리야사바랭은 “당신이 평소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고 했다. 현대인의 심성이 냉정한 것도, 늘 냉장한 음식을 먹는 탓인지 모를 일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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