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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기펜재 / 박순빈

등록 2015-01-13 18:47

시장에서 특정 상품의 수요량은 그 상품의 가격 등락에 반비례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자의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소득효과가 발생해 수요가 줄어든다. 이와 함께 그 상품과 비슷한 효용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들로 수요가 이동하는 대체효과까지 생긴다.

그런데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를 압도하는 상품도 있다. 이런 상품은 가격이 올라도 전체 소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실질소득을 아랑곳하지 않는 마력(?)이 그 상품에 내재하여 있는데다 마땅한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경우다. 경제학에선 이런 상품을 ‘기펜재’라고 한다. 미시경제학의 창시자인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의 원리>에서 스코틀랜드 통계학자 로버트 기펜의 이름을 따서 만든 개념이다. 경제사가들은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 때의 감자를 기펜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감자마름병이 돌아 하층민들의 주식이었던 감자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수요가 줄지 않았다. 여기에다 식민통치국인 영국이 보리와 밀 등 대체식량을 방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거두어 가 식량난을 부추겼다.

시장경제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아일랜드의 감자처럼 뚜렷한 기펜재를 찾기 힘들다. 다만 소득 계층에 따라 가격과 수요의 탄력성이 낮은 경우는 많다. 담배 소비가 바로 그렇다. 기펜재적 특성이 강한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 더 많이 팔리는 소주도 한국형 기펜재라고 할 수 있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80%(갑당 2천원) 올라 담배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판매액으로는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의 올해 세입 예산에서 담뱃세 수입은 지난해보다 2조8천억원이나 늘어난 9조5천억원이다. 종합부동산세 수입 예상액(1조3천억원)보다 7배가량이나 많다. 땅부자, 집부자보다 끽연자들의 세수 기여도가 더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기통제에 실패한 국민’이라는 등 끽연자들을 비하하고 있다. 기펜재적 성격이 강한 상품을 매개로 한 정부의 농간과 국민 모독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30여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새해 들어 끊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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