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지하의 반대말은 지상이기보다는 천상이었다. 천상이 신과 천사들, 착하게 살다 죽은 사람들이 영생하는 세계였다면, 지하는 악마와 좀비들, 악하게 살다 죽은 자들이 끝없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세계였다. 천상은 광명과 축복의 공간이요, 지하는 암흑과 저주의 공간이었다. 천당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하는 죽어서나 묻히는 곳이었다. 지하는 산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류는 간헐적으로 지하 세계를 공략하고 개발했다. 4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는 3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지하도시였다. 최근 터키에서는 이보다 더 크고 오래된 지하도시 유적이 발견됐다. 지상 세계에서 용납되지 못한 사람들, 권력에 의해 죄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이들 지하도시를 건설했다. 지하실, 지하도들도 세계 도처에 있었는데, 거의가 밀실 아니면 비도(秘道)였다. 다중이 알아도 되는 지하 시설물은 하수도뿐이었다.
인류는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지하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털어내고 이 공간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1863년, 영국 런던에 증기 기관차가 달리는 지하철도가 건설됐다. 이어 빈, 베를린, 파리의 지하에도 철도가 놓였다. 1935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은 고양군 은평면에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고, 종로 화신백화점 아래까지 지하철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건설 구상이었다. 서울에 지하철을 놓겠다는 구상은 이후에도 몇차례 나왔으나, 실현된 것은 1974년이었다. 지금은 수도권 외에 부산, 대구에도 지하철이 있다.
오늘날엔 한반도에서만도 하루 천만명 이상이 지하 공간을 들락거린다. 지하철도가 더 깊이 내려가는 데 비례하여 고층 건물들의 지하 공간도 깊어졌다. 이제 지하는 더 이상 악마들의 거주 공간이거나 지옥의 소재지가 아니다. 지하에서 풀려난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상으로 올라와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활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