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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분나 마프라트

등록 2015-01-20 18:51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이제 커피는 많은 사람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커피를 만든다. 아침 커피는 머그잔이 아니라 작은 다완에 세 잔 마신다. 에티오피아의 ‘분나 마프라트’(커피 세리머니)를 안 이후 생긴 습관이다. 인류 최초로 커피가 발견되고 전해진 에티오피아에선 하루의 시작을 분나(커피의 에티오피아 말) 의례로 연다. 생원두를 작은 무쇠 판에 볶고 나무절구에 빻아 토기 주전자에 물과 함께 끓여서 손잡이 없는 작은 잔으로 세 잔을 마신다. ‘불맛’이 커피콩에 스밀 때 향을 피워 의례의 신성함을 더한다. 첫 잔은 우애의 잔, 둘째 잔은 평화의 잔, 셋째 잔은 축복의 잔이다. 커피 의례로 아침을 연 가족들은 서로 포옹하고 각자의 일터로 간다. 손님을 접대할 때도 세 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몇 스푼의 갓 볶은 커피가루를 물과 함께 끓여 나누어 먹는 이 소박한 의례를 알고 난 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핸드드립 공식’에 연연했음을 깨달았다. 핵심은 마음이다. 거친 대지에 발 딛고 하루분의 삶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우애, 평화, 축복을 일깨우는 한 줌 커피콩의 힘. 그 마음작용이 중요한 것이지 ‘맛과 향’ 추출에 과하게 집착하던 그간의 내 습관은 정작 핵심을 놓치고 있었던 거다. 커피콩 체리들이 향기로운 원두로 변해 내게 오기까지 그 기나긴 과정에서 수고한 손들을 생각한다. 그 모든 수고 위에 우애와 평화의 따스함이 어리기를. 매일의 커피 한 잔이 모두에게 진정한 ‘축복’이 되면 좋겠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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