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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굳세어라 창진아

등록 2015-01-27 18:45

‘굳세어라 창진아’란 글 제목은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살짝 비튼 것이다. ‘창진아’는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을 가리킨다.

나는 박 사무장과는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결례를 무릅쓰고 ‘창진아’라고 쓴 것은 봉급생활자 선배로서 그에 대한 친밀감과 연대감을 나타내고 싶어서다.

박 사무장이 지난해 12월12일 처음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저 친구, 앞으로 회사 생활 제대로 할 수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다. 대한항공 같은 ‘오너’가 있는 회사에서 박 사무장이 앞으로 어떤 고초를 겪을지 정말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박 사무장은 회사한테서 회유와 인사상 불이익 암시, 정체불명의 ‘지라시’를 통한 비열한 인신공격까지 받아야 했다.

나는 <한겨레>에 들어오기 전 20대 후반에 이른바 ‘오너’가 있는 회사에서 1년가량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그 회사 안에서 오너는 왕처럼 군림했다. 그 회사 선배들은 술자리에선 오너의 전횡을 매섭게 비판하다가도, 막상 오너 앞에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를 읊조리는 ‘지당대신’으로 전락했다.

나는 당시엔 이런 선배들이 참 비겁하고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들만큼 나이를 먹은 요즘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의 옛 회사 선배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밥줄을 쥐고 있는 오너에게 어느 월급쟁이가 지옥으로 갈 각오 없이 대들 수 있겠는가.

40대 초반인 박 사무장은 대한항공에서 18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대한항공 안에서 오너가 어떤 존재이고 ‘회사 밖은 지옥’이란 세상 물정도 알 만한 나이다. 그런 박 사무장이 왜 언론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했을까. 그는 “회사라는 큰 힘에 의해 빼앗긴 개인의 존엄함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개가 아니었지, 사람이었지, 나의 자존감을 다시 찾아야겠다. 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이것은 아니다.”

앞으로 박 사무장이 대한항공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 당권·대권 논란보다 이게 더 궁금하다. 내 주변 봉급생활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비슷했다.

판사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난 19일 ‘땅콩 회항’ 사건 첫 공판에서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오성우)는 직권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30일 열리는 두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조현아 피고인은 언제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창진 사무장은 과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도 재판부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증인채택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병가 중인 박 사무장은 ‘출근은 오너라고 막을 수 없는 개인의 권리’라며 2월1일부터 출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또 자존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소설가 김훈은 12년 전 낸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나는 밥벌이에는 대책이 없지만,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란 점을 박 사무장의 언행을 통해 배웠다. 이 글은 봉급생활자 선배로서 박 사무장에게 힘을 주고 싶은 ‘사감’으로 썼다. “창진아, 굳세어라!”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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