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스포츠부장
공직사회를 겨냥한 김영란법에 골프업계가 난리다.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금품·향응에 골프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체면상 사교 모임의 비용을 ‘더치페이’로 해결하는 것을 꺼리는 습속이 있는데, 골프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골프장 이용료(그린피)를 모임 주선자가 전부 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그린피가 워낙 비싸서 클럽하우스의 식음료 등을 포함하면 금세 김영란법의 처벌 한도인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결국 이 법이 통과되면 골프 접대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골프장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게 골프업계의 주장이다. 골프의 본고장인 미국, 유럽과 달리 골프가 접대의 상징이 돼버린 독특한 골프 문화 탓이다.
난리가 난 건 골프업계뿐만이 아니다. 일부 언론은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은 골프를 향응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최근 골프 취재기자단에서 벌어진 소동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한 기자가 골프 대회 기간 중 코스 답사 명목으로 기자단에 제공되는 ‘공짜 라운딩’의 문제점을 <미디어 오늘>에 제보했다. 주최 쪽이 라운딩 전 기자들에게 게임비를 주고 라운딩 후에는 각종 상을 만들어 백화점 상품권이나 골프채, 휴대전화 등을 상품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만찬이 곁들여지면 비용은 더 커진다.
제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골프 기자단 운영을 둘러싼 갈등 끝에 제보가 이뤄졌다는 제보의 순수성 논란에서부터 그 내용이 심하게 부풀려졌다는 과장설, 세계적 골프 대회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도 기자단에 라운딩을 제공한다는 항변까지 다양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를 떠나 기자단 라운딩에 대한 경고음인 것은 분명하다. 코스 답사 뒤 쓴 기사가 더 현장감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라운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을 언론인으로 확대하면 언론 탄압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한편으론 골프 대회에 취재 기자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질 것 같아 그대로 통과됐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순진한 발상일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송년호(2014년 12월20일치)에 ‘골프의 쇠락’(The decline of golf)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미국에서 지난 한해 동안 18홀 규모의 골프장 160개가 문을 닫았다. 잡지는 8년 동안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골프 인구는 8년 전에 비해 18% 감소한 2500만명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골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인구는 6%나 증가했다. 골프 왕국인 미국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잡지는 양극화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산층이 붕괴돼 골프를 즐길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크게 줄었다. 자녀 학비와 주택 대출금을 갚기 위해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 반면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골프 클럽은 여전히 잘나간다. 중산층이 이용하는 퍼블릭 골프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프로골프 대회에는 스폰서와 광고가 몰리고 있다. 수천달러에 이르는 관람료를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골프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것은 중산층에 돈과 시간적 여유가 넘쳐나던 때였다. 지금은 월가의 고액 연봉자나 금융자산이 많은 은퇴자들이 주로 그린을 거닌다.
미국의 사례는 골프가 점점 대중 스포츠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어떨까. 대중 스포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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