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섬 사이에 누군가 있다

등록 2015-02-04 18:42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에리크 사티를 찾는다. 그의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를 반복해 듣는다. 짐노페디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소년’이라는 뜻, 축제에서 소년들이 추는 춤을 뜻하기도 한다. 시인 장 콕토가 “벌거벗은 음악”이라고 평하기도 한 사티의 짐노페디는 방전을 막아주는 음악이 아니라 어서 방전되라고, 까무룩 잠의 숲으로 빠져들라고, 선천적 ‘저질 체력’ 보유자인 나에게 일종의 장막을 쳐준다. 휴식의 장막이 필요할 때 응급약처럼, 숨구멍처럼 사티가 있다. 그의 음악은 ‘쉬어도 돼’라고 말해준다. 당대 많은 예술가들에게 미학적 영향을 끼쳤으나 사티 자신은 거의 완벽한 ‘사회부적응자’, 곧 하나의 섬이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예술가들의 아지트 술집인 ‘검은 고양이’에서 생계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던 사티. 단순 반복의 배경음악 같은 ‘가구음악’을 통해 예술을 평범한 일상의 자리로 끌어내리려 한 그의 의도는 훗날 존 케이지 같은 이를 만나면서 빛을 보기도 했지만 당대 대중에게는 거의 이해받지 못했다. 유기견을 돌보며 산 그가 “난 개들을 위한 음악을 할 거야”라고 장 콕토에게 한 말은 그가 추구한 예술의 일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부적응자라 불리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고독은 깊고 섬처럼 떠 있으나, 섬과 섬 사이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모스 부호를 보내듯 피아노를 치는 사티처럼, 그의 타전을 받고 휴식을 취하는 또 누군가처럼.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