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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남북통일의 천시, 지리, 인화 / 진징이

등록 2015-02-08 18:52

올해로 남북한은 광복 70돌이자 분단 70돌을 맞이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적기라고 한다. 맹자가 말한 ‘천시’(天時)라 하겠다. 남북한 정상들은 연초부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렇지만 맹자가 말한 ‘지리’(地利) 때문일까. 마치 쐐기라도 박듯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이 ‘북한 붕괴론’을 들고나와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다행히 맹자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만 잘 풀리면 만사형통이라고도 한다. 남북관계가 바로 ‘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한은 과연 광복 70년이라는 천시에 인화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남북관계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통일로 보인다. 올해를 “통일시대를 개막하는 해”로 규정하고 통일헌장을 제정하며 한반도 종단 및 대륙철도 시범운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발 열차가 경의선을 이용해 신의주, 나진까지 달리는 것도 구상한다. 이 통일열차에는 북한 전역에서 이뤄질 거창한 통일 준비 노력이 실려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통일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남한이) 북남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가장 큰 정치적 목표는 역시 체제 수호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전단(삐라) 살포를 금지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 강하게 들고나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남북한은 ‘남원북철’(南轅北轍·수레의 끌채는 남쪽으로 향하는데 바퀴는 북쪽으로 굴러간다는 뜻으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인 셈이다. 남북관계가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한국의 ‘통일준비위원회’가 통일 열기를 띄우면 띄울수록 북한은 이를 마치 정권을 접수하려는 ‘인수위원회’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의 기조로 내세웠다. 맹자가 말한 ‘인화’라 하겠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전쟁 소동을 겪으면서도 신뢰를 내세우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성택 사건을 겪으면서 신뢰프로세스는 점차 사라지고 ‘통일 대박론’이 대세를 이뤘다. 왜 그랬을까. 김정은 정권이 불안하다는 판단과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는 판단에 따라 통일을 이룰 ‘천시’와 ‘지리’가 구비됐다고 본 것은 아닐까. 실제 지금이 통일을 이룰 천재일우의 적기라고 보는 시각도 많은 것 같다.

되돌아보면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통일보다 평화가 강조됐다. 북한을 공존의 상대로 본 것이다. 지금은 통일과 공존을 별개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남한의 통일 열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맹자의 말을 빌려오면 통일에는 천시, 지리, 인화가 함께 구비돼야 할 것이다. 실제 윤병세 외교장관은 “이제 통일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천시가 구비됐다는 뜻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해왔다. 지리를 구비하기 위한 행동인 것 같다. 지리(地利)는 지리(地理)와 통하는 지정학적 요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시와 지리는 보이는데 정작 맹자가 가장 중요시했던 ‘인화’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통일할 상대인 북한도 보이지 않는다. 천시와 지리만 있으면 통일이 이뤄지는 것일까. 삼국지의 위·촉·오 세 나라는 천시, 지리, 인화로 종합적인 실력을 두루 갖춰 ‘삼족정립’(三足鼎立)의 국면을 형성했지만 오·촉 두 나라는 결국 인화를 잃었기에 실패하고 사라졌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북한의 통일 역시 인화를 떠나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설혹 천시와 지리 덕에 통일을 이루었다 해도 인화(人和)가 없으면 인화(人禍)를 당할 수도 있다. 인화(人和)의 화는 화해와 평화의 화이다. 그 바탕은 바로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신뢰다. 신뢰를 버리고 통일만 강조하면 이는 한낱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 필경 70년의 분단을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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