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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치약

등록 2015-02-16 18:49

‘이빨 빠진 호랑이’는 무섭지 않은 호랑이이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호랑이다. 이빨로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동물 개체 각각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수가 있다면, 아마도 이빨의 수명 더하기 약간의 알파일 것이다. 인간도 동물인 이상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인간은 신이 정해준 운명에 도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유일한 동물이기에, 일찍부터 이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법도 개발해왔다. 자기 이를 일상적으로 관리하는 동물은 설치동물들과 인간밖에 없다.

오복(五福)이란 본디 건강하고 부유하게 오래 살며 남에게 베풀다 편히 죽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건강한 이가 오복의 하나’라는 속설이 널리 유포되었던 것은, 건강과 장수 여부가 이에 달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오래 지키기 위해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문지르거나 위아래 이를 딱딱 부닥치거나 입안에 약초 달인 물을 머금는 등 여러 방법을 썼는데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면 효과가 의심스러웠다.

19세기 초, 불소에 충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860년께에는 영국에서 불소 성분을 함유한 분말 치약이 개발되었다. 1900년 무렵에는 이 분말이 ‘이 가는 가루’라는 뜻의 치마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다. 그 뒤 수십년간, 조선의 치약 시장은 일본 고바야시 상사에서 만든 ‘라이온 치마분’이 지배했다. 전쟁 중이던 1952년에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가짜 ‘라이온 치마분’을 생산하던 ‘소굴’이 적발되기도 했다. 칫솔은 돼지털로 만든 것에서 시작해서 셀룰로이드제, 나일론제 등으로 잇몸에 상처를 덜 주고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하루 두세번씩 치약과 칫솔을 사용해 이를 닦는 현대인의 일상 행위는, 과학 지식으로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지식권력’에 복종하는 의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집단적이고 반복적인 의례는, 개체에게는 축복이나 집단에는 고통일 수 있는 고령화 시대를 연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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