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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부자 건강보험과 가난 / 김양중

등록 2015-02-17 19:10

어릴 때에는 설 명절이 마냥 좋았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을 명절 때 찾으면, 기쁘고 슬프고 때로는 노여웠던 많은 기억들이 난다. 삶을 살아가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명절 때 언론에서는 꼭 돌아보는 곳이 있다. 꼭 부유한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지만 명절 연휴를 외국에서 보내기 위해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이와 함께 설 명절조차 찾는 이 없고 심지어는 먹을 것도 없는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도 있다.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야 신풍속으로 다루는 뉴스겠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소식은 좋은 날을 기쁘고 즐겁게 함께 지내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반성을 깨우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우리 사회에는 설 명절에도 가난한 이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최근 낸 논평인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라는 글을 보면 의료비 때문에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빈곤화 및 빈곤 지속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소개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5가구 가운데 1가구가량인 20.6%에서 의료비 지출이 전체 가계지출의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는 의료비 지출 비중이 40%를 넘는 가구도 4.7%에 이른다. 의료비 지출이 많을수록 교육은 물론 의식주 등 생존에 필수적인 곳에 돈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연구 결과를 좀더 보면 의료비가 가계지출의 10%를 넘는 가정은 빈곤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18.6%에 이르렀다. 의료비를 이보다 적게 쓰는 가구와 비교하면 이 수치는 3.2배에 이른다. 의료비 부담만 줄여줘도 적어도 가난으로 설 명절을 슬프게 보내는 가구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비 안전망은 건강보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6일 밝힌 ‘2014년 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누적적립금은 12조8000억원이나 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건강보험 흑자가 4조6000억원으로 어느 해보다 많았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줄어든 데에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2005~2011년까지는 한해 평균 12%씩 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2012~2014년 3년 동안은 한해 평균 5.5%씩으로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건강검진을 많이 받아 질병을 조기에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고, 암 발생이 줄어들어 진료비가 덜 들어갔다는 추정도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계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중산층 및 저소득층이 아파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그해 아파서 치과를 제외한 병·의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사람의 비율은 12.2%나 된다. 다만 이 비율은 2011년 18.7%에 견줘 줄어드는 추세다. 문제는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다.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한 답 가운데 ‘돈이 없어서’라고 적어 낸 사람의 비율은 2013년 21.7%나 됐다. 이 수치는 2010년 15.7%, 2011년 16.2%, 2012년 19.7%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건강보험은 역대 최대 부자인데,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어느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서 병원도 못 가고 또는 치료비를 대다가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웃을 돌아보자는 설 명절에 떠오른 씁쓸한 통계들이 아닐 수 없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대신 있는 조금의 돈이라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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