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에 새삼 느낀 것은 어디를 가도 중국인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쇼핑몰에서도 기차역에서도 스키장에서도, 또 내가 사는 일산의 호수공원에서도 중국말을 예사로 들을 수 있었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春節, 2월18~24일)에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중국인이 500만명인데 그 가운데 12만6천여명이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숫자다. 시민들이 고향으로 빠져나가 텅 빈 서울 도심은 이들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이 채웠다. 명동이나 북촌, 서촌, 신사동 가로수길, 부산, 제주도의 화장품 가게, 옷가게뿐 아니라 식당과 노점까지 설 연휴에도 문을 열고 몰려오는 유커들을 맞았다. 몇 년 새 유커의 거리로 변한 명동은 중국어 안내판, 중국어가 어색하지 않은 점원, 유커가 어울려 상하이나 홍콩의 어느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국을 찾는 유커의 증가세는 놀랍다. 2012년 284만명에서 2013년 433만명, 작년에는 613만명으로 해마다 40% 이상 늘었다. 올해는 720만명, 3년 뒤인 2018년에는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해외여행지로 꼽혔다는 최근 중국 쪽 조사 결과도 있어 ‘유커 1천만명 시대’가 허장성세만은 아닌 듯하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7천달러로 소비욕구가 분출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외제 소비재를 사서 쓰고 해외여행을 하는 게 중산층의 소망이 됐다. 최근 유커 물결은 위안화 강세에다, 많은 나라에서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고 거리가 가깝다 보니 유커로 상징되는 소비 폭발이 우리 경제에 주는 의미가 적잖아 보인다. 중국 전문가인 전종규 삼성증권 책임연구원은 저서(<요우커 천만 시대,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에서 “지난 5년간 우리가 경험한 유커 붐과 앞으로 벌어질 유커 붐은 차원이 다를 것”이라 한다. 유커가 한국 경제의 지도를 바꿀 잠재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유커는 손이 크다. 한국관광공사가 추계한 걸 보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613만명이 창출한 생산유발효과는 18조6천억원이다. 승용차 70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라 한다. 고용유발효과는 34만명이나 된다. 유커가 탄 버스 한 대(40명)당 2명꼴로 새 일자리가 생긴다. 1천만 유커가 쓰는 30조원은 우리 내수의 10%에 이른다. 고질적 내수 부진에 관광객 소비라는 예상외의 햇살이 드는 것이다.
유커붐은 “중국은 이제 소비재 시장”임을 일깨워준다. 기업은 중국을 국내와 통합된 내수시장으로 봐야 한다. 이런 흐름에 잘 올라탄 아모레퍼시픽 같은 회사의 주가는 1년 전 110만원에서 현재는 280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물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인이 몰려오자 번잡한 걸 싫어하는 한국 손님이 빠지는 상권도 생긴다. 해마다 4천만명의 본토인이 찾는 홍콩은 ‘메뚜기’가 휩쓸고 간 것 같은 유커에 몸살을 앓다 급기야 최근 상점가에서 “(유커는) 홍콩을 떠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모처럼 온 유커붐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기회이길 바란다. 서울과 한국의 필수 여행정보 플랫폼으로 성장한 ‘짜이서울’, 저렴하지만 깔끔한 호스텔로 뜬 ‘스타호스텔’같이 유커 물결에 올라타 성공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도 한국 사람의 일상을 보고 싶어하는 유커가 몰려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설에 “이제 직장은 구했느냐”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은 청춘들에게 유커를 살펴보라고 하면 조금 위안이 될까?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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