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시한도 훌쩍 넘기고, 5년 넘게 끌어온 월성1호기 계속운전 심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최신기준 적용 문제, 설비개선 비용 문제, 지진 대비 안전 문제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권고나 월성1호기와 같은 중수로의 종주국인 캐나다 규정을 보면, 계속운전은 건설 시 기준에 기반을 두되 강화된 최신기준을 가능한 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계속운전은 전문가 집단의 기술적 안전 심사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 국민은 월성1호기가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으며 당장 폐쇄하더라도 전력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겨울이 이를 방증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주요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전문가 집단의 판단만을 믿으라는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최신안전기술기준을 적용해 월성1호기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국내 원전 안전은 유유상종 전문가 집단과 함께 아직도 20세기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은 기술인과 많이 다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계산과 확률에 근거한 정량적 안전에 더해 소통과 공감에 근거한 보편적 안심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과반수가 “월성1호기가 불안하니 곧바로 영구정지”를, 나머지는 “안전하다면 계속운전”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응답자 모두가 계속운전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성1호기 계속운전 심사 과정을 보면 공론화는 고사하고 공청회나 공개토론도 없었다. 자료공개는 유명무실하고 영업비밀을 이유로 열람조차 인색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원전밀도나 인구밀도에 대해서도 절박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법조문 부칙이나 종주국 선례를 빌미로 현실에 안주하고자 했다. 따라서 월성1호기 계속운전에는 선결과제가 남아 있다.
월성1호기에 최신 안전기준을 적용하여 설비를 개선할 경우 계속운전 비용은 훨씬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의 경우 계속운전을 위해서는 평가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설비개선을 재가동 전까지 마쳐야 한다. 안전을 확보해야만 가동을 허용하는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상식이 국내에선 실종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는 일단 재가동 후 보수를 하자는 것인데, 비행기에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운항을 계속하면서 수리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수백만개의 부품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는 원전에서 드러난 위험을 재가동하면서 보완해 나가겠다는 것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허용한다면 유구무언이 아닐 수 없다.
4조원 넘는 예상비용에 영구정지된 캐나다의 젠틸리 2호기를 반면교사로 삼자. 주민이 5천명인 시골에 하나 있는 캐나다의 포인트 르프로 원전은 2조원 넘게 투자하고 5년을 연장했다. 6천억원 정도 투자해 10년을 연장하려는 월성1호기 주변엔 100만명이 넘는 주민이, 부지 내엔 6기의 원전이 몰려 있다. 다수 호기 동시사고에도 동해안은 무사할 것인가.
원전 안전법보다 더 중요한 건 주민 수용성이다. 당국도 이젠 법규만 따지고 원전만 챙기는 소승적인 견지에서 벗어나 민족과 미래까지 추스르는 대승적인 안목을 겸비해야 한다. 이것이 원전 안전의 세계화요 국민화다. 언제까지 인력과 예산 타령만 할 순 없다. 재앙은 기다려주지도, 비켜가지도 않는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월성1호기와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한다 해도 2016년부터 2025년까지 20%가 넘는 설비예비율을 유지해 전력공급은 안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월성1호기가 멈춰서도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면 더는 안전을 담보로 계속운전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국민이 불편하고, 주민이 불안하다는데.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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