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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과일의 시간

등록 2015-03-02 19:16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천혜향이나 한라봉 한두개를 식탁 한쪽에 올려놓았을 때 식탁은 조금 전의 그 식탁이 아니다. 노랗게 익은 향기로운 모과 한알, 붉은 석류 한알을 식탁에 올려두고 바라볼 때 갑자기 식탁이 깨어나는 마법. 식탁은 소소한 명상의 장소로 변신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과일을 올려두고 바라보는 일은 꽃을 꽂아둔 식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먹을 수 없는 꽃과 먹을 수 있는 과일의 차이겠다. 먹어버릴 수 있는 과일을 먹지 않고 하나나 두개 식탁 위에 둔다는 것은 씨앗부터 과육에 이르기까지 나무의 삶 전체 역사와 만나는 일이다. 한 계절 순간의 절정을 누리는 꽃과 달리 과일은 봄 여름 가을을 온몸으로 통과한 결실이므로 과일에는 꽃의 향기부터 낙엽 냄새까지가 모두 들어 있다. 식탁에 올려둔 과일의 빛깔과 향기에 잠시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건조한 생활에 율동감이 생긴다. 왜 하필 식탁인가. 거기가 가장 적나라한 일상의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니즘’이란 신조어가 생기듯이 ‘먹고살기’는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 동시에 어딘지 조금 쓸쓸한 일이기도 하니까. 남루해 보이는 일상의 ‘바로 그 자리’가 나를 깨우는 가장 귀한 자리이기도 하다. 향기로운 과일 하나가 식탁에 올려져 있을 때, 나 또한 향기롭게 잘 익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빠듯한 생활일지라도 식탁 한편에 향기로운 숨구멍 하나쯤 마련해두고 살면 좋겠다.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잘 익어가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스스로에게 ‘과일의 시간’ 선물하기!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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