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이 ‘우경화’했다고 주장하며 탈당·신당 창당 운운하는 말들이 있어 왔다. 국민에게 제시한 야당성 또는 대안성이 희미했기에 오히려 ‘우경화의 늪’에 빠졌다는 심한 비판까지 나온 것이다. 개혁 과제가 산적한 나라에서 ‘중도화’ 운운은 결국
수구의 길인 것이다.
수구의 길인 것이다.
최근에 나온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씨의 글을 보니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가짜 민주주의’라는 회의감을 말하였다.
1년쯤 전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가권력과 타락한 언론이 그 뒷배인 막강한 시장권력 카르텔이 정치불신을 조장하는 동안 의회권력은 끝없이 약화되고” “정치 축소가 ‘새정치’로 둔갑하는 역설을 마침내 목도하고 있다”는 글을 썼다.
정치다원론에 따르면 사회발전에 따라 경제계, 시민단체, 언론 등등 각 분야의 역할이 커지니까 정치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고, 가령 외세의 작용이 강해지니까 국가정치의 힘이 약해진다든가, 재벌의 ‘미다스의 손’이 위력을 발휘하니까 정당의 힘이 빠진다든가 하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미국에서 공화당에 비해 개혁적이라는 민주당도 월가의 정치헌금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인데, 이번 대통령선거의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도 너무 과도하게 월가 정치헌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보도다. 민주당에서 개혁적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그러한 월가 편향을 견제하고 나서고 있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미국의 양당도 월가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힘든 모양이다.
얼마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평을 보니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 민주당 정권의 퇴진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오키나와의 기지를 옮기려 하였기 때문. 물론 일본 민주당 정권의 무책임한 복지공약 남발도 문제였지만.
국제정치의 ABC에 속하는 일이지만 미국이 우방국이라는 여러 나라의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지금 한참 구체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 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배치 문제를 지켜보면 아마 그 실상을 얼마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을 각각 관찰하는 일도 중요하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차를 맞아 청와대와 당 간에 친박계와 비박계 간에 막후에서 치열한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하고 있다. 김무성, 유승민 의원의 역량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나쁘다고 볼 것만은 아니다. 그게 정당정치의 본령이고 정치발전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갈등을 금기로 보는 것이야말로 비민주적인, 오히려 전제적인 발상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의 큰 기둥이나 중심이 없는 가운데 갈팡질팡 표류하며 이상한 모양을 보여 왔었는데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일단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당의 ‘우경화’를 주장하며 탈당·신당 창당 운운하는 말들이 있어 왔다. 거의 무시할 만한 무게의 이야기들이었는데 기득권층에 기운 일부 언론들이 그것을 무슨 일이나 난 것처럼 보도해 댔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동안 야당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웠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제시한 야당성 또는 대안성이 희미했기에 오히려 ‘우경화의 늪’에 빠졌다는 심한 비판까지 나온 것이다. 개혁 과제가 산적한 나라에서 ‘중도화’ 운운은 결국 수구의 길인 것이다.
박 정권의 현상은 어떤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선거 때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사회의 양극화, 빈부의 양극화는 심화일로에 있다. 재벌들에는 세금을 깎아주어 태평성대의 부귀를 누리게 하고, 노동계층은 쪼들리는 살림에 시달리고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최근 글에서 한 토막만 인용한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계에 전달되지 않아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는 심화하며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이 3.8%이지만,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이며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는다. 부채상환을 빼면 가처분소득은 뒷걸음질을 치는 실정이다. 결국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나아가 서민 가계를 향상시켜야 한다.”
그런데 박 정권은 노동계층을 억누르는 데 처음부터 작심이나 한 듯 매진해왔다. 교원노조를 ‘법외’로 만들었으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철권으로 탄압하고, 무슨 토끼사냥이나 하듯 서울 시내에서 5000 경찰력을 동원하여 그들이 농성하고 있다고 보이는 경향신문사 사옥에 있는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들이쳤다. 무슨 흉악범인가, 체포하면 1계급 특진이라고, 그리고 노동계층 정당 가운데 하나인 통합진보당을 막무가내로 해산해 버렸다. 법원에서는 2심에서 ‘내란음모’가 아니고 ‘내란선동’이며, ‘아르오’(RO)는 없다고 판결을 하였음에도, 정부의 제소를 받은 헌법재판소는 해산 결정을 해버렸다. 무슨 라이벌 다툼이기나 한가.
여러 가지로 미루어볼 때 박 정권의 노동탄압은 분명하다. 가히 파시스트적이라 할 수 있다. 파시즘이라고는 않겠다. 5년 단임으로 파시즘을 하기도 어렵고, 국민의 수준이 그러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간 박 정권은 종북몰이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가정보원장이 종북몰이의 주역들을 직접 만났고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까지 되었다. 정치사에서 드문 일이다.
이렇게 말하다 보면 야당이 할 일들은 몇 가지 분명해진다. 선거 때 제시되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논의를 계속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제 시대의 명제가 된 것이다.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 인상도 불가피하다. 우선 부자나 대기업·재벌부터 시작, 마지막에는 서민층에게 부담이 가는 부가가치세 인상 등도 필요하다면 실시해야 할 줄 안다.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여야를 떠난 당연한 명제이다. 그러면서 아울러 노동계층의 권익 보호도 배려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배타적이거나 양자택일의 명제가 아니다.
우선 또 계속 부닥치는 게 종북몰이 공세다. 이 공세에 재미 붙여 극우세력은 마치 무슨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른다. 대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과감히 맞서는 것이다. 맞서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최종숙 박사 등이 쓴 <정치는 감동이다>란 책이 있다. “결국 종북주의 논란 속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고 결론지은 이 책은 종북몰이에 대항하여 싸울 방법론을 설명하고도 있다.
종북몰이와 관련되는 대북정책의 핵심은 쌍방이 서로 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눈감은 ‘통일대박’ 운운은 공허할 뿐이다. 북한은 실패한 체제이다. 그러나 중국이 있는 한 없어져 버릴 체제는 아니다. 중국의 경제력으로 볼 때, 막말로 동3성 옆에 ‘동4성’도 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북핵 문제는 북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전제에서 풀어나가야 할 줄 안다. 그런데 초대국가 미국과 중국이 대치하고도 있어 풀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을 계속 중요 동맹국으로 하지만 제갈량과 같은 지혜를 발휘하여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야당을 책임진 문재인 대표의 책임은 무겁다. 많은 국민들이 지난 대선 때의 문 후보를 기억하고 있고, 그 의문이 남아 있는 근소한 표차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후 바로 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도 있다. 문 대표가 크게 바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때의 페이스를 발전시키면 좋을 것이다.
지금 국회가 당면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에서 비례대표를 죽이면 절대 안 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또한 연합정치의 길도 넓게 열어 놓아야 한다.
일부에서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면, 통일 후 아예 내각책임제는 몰라도, 그런 개헌은 안 될 것으로 본다. 이원집정부제 운운하는 분권형 권력구조로는 행정부의 추동력이 격감한다. 지금 독재를 우려하는 국민은 없다. 지금 제도로도 대통령은 2년만 지나도 힘이 빠지고 3년 지나면 레임덕처럼 된다. 그런데 제대로 기능할지가 의심스러운 분권형 권력구조라니!
한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용감성과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옛날 정계에서는 “지도자는 도낏자루를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격언처럼 전해졌었다. 국민은 용감한 지도자를 따른다.
남재희 언론인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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