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문송’이란 말이 다 나올까. 이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대학의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내뱉는 자조 섞인 신조어라고 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려고 2013년 말 발의된 세 가지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신계륜 의원 대표발의), ‘인문사회과학진흥법안’(이명수 의원 대표발의), ‘인문정신문화진흥법안’(김장실 의원 대표발의)이다. 인문학계는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곧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 법안 모두 대학 안팎의 인문학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대학 내 인문·사회과학 연구지원’에 강조점을 두었고, 다른 쪽은 ‘인문정신문화 콘텐츠의 대중화’를 앞세운 것이다. 교육부를 주무부처로 지정한 신계륜 의원안과 이명수 의원안이 전자, 문화체육관광부 손을 들어준 김장실 의원안이 후자다. 지난 2일 국회 공청회에서도 연구지원이냐 대중화냐를 놓고 전문가들이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 법안이 탄생한 공통 배경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점에 있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일반대학 인문계열 입학정원은 4만7000여명에서 4만4000여명으로 줄었다. 관련 학과도 속속 통폐합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중앙대학교의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사실상 기업식 구조조정으로, 기초학문과 인문사회과학계열의 고사를 부추기는 일이라며 폭넓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상황이 이러니, 지난달 4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취업을 하고 난 다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논란이 된 것은 당연하다. 학술진흥 담당 부처의 수장이 인문학을 “취업 뒤 자기계발”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연구 지원보다 대중화를 지지해온 문체부 쪽은 반색했을지 모른다. ‘인문정신문화진흥’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로, 문체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인문정신문화의 대중화는 기존 문화기본법,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잘만 활용해도 가능하다. 인문학 연구지원 관련 규정에도 학술진흥법이 있다. 하지만 국회 전문위원 법안 검토 보고서를 보면, 인문학 자체를 지원하기 위한 법이 아니기에 이것만으로 쇠퇴하는 인문학을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소속 연구기관에도 인문학 연구기관이 전무하다. 연구회가 기획하는 협동연구사업에서도 인문학 집중연구는 미흡하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물론 인문학과 인문정신 진흥을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건 박수 칠 일이다. 다만 대학의 인문학 재생산 자체가 어려워진 지금 상황에서는 인문정신도 제자리를 찾을 수 없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 인문학과 대중의 인문정신을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에 수긍하기 어렵다. 인문정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사유와 인식을 갖도록 하는 문·사·철 중심의 인문학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대학은 인문정신의 산실인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출판인은 “사람들이 자기계발 하느라 시간이 없어 책을 사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문정신문화를 대중화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인에게 인문학을 향유할 시간을, 연구자들에게는 국가 경쟁력 논리와 무관한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법으로 아무리 멋들어진 문화시설을 확충해도 시간과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없다면 모두 무슨 소용이겠는가. 인문학·인문정신 발전의 선결조건은 삶의 여유 확보와 대학의 공공성 강화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frog@hani.co.kr
이유진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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