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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예술가의 노년

등록 2015-03-31 18:56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어느 날 운전을 하며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듣게 된 한 토막 목소리가 왜 그토록 서늘하고 아프던지.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귀를 기울였다.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을 따라서 갈까보다.” 가슴이 쿵 했다. 악기 없이 오직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마음에 강력한 파동을 일으키는, 명창 김소희씨의 목소리였다. 서양음악에서 목소리를 쓰는 방법과 한국의 판소리 가창에서 목소리를 쓰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명창들은 가성이 없는 진성만 쓴다. 그들의 목청은 성대를 상하게 해서 얻는 소리다. 성대에 상처를 내고 상처가 굳으면 다시 상처를 내고…. 득음의 과정은 말 그대로 ‘피나는’ 고통의 과정이다. 상처와 치유가 반복된 기나긴 과정의 종점에서 마침내 득음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얻어진 소리에는 쓰라린 인생을 정면 통과한 이의 해탈의 느낌이 있다. 김소희씨는 평생 배운 사람이었다. 소리, 춤, 악기에다 한학까지 공부한 그는 서예를 했다. 소리의 완성을 위해 이 모든 게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너의 격이 너의 소리로 나온다”고 늘 말했고, 자신의 격을 높이고 완성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예순세살에 치렀던 50주년 공연 이후 큰 공연 무대에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던 이유 역시 김소희다웠다. “이제 내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목소리로 대중 앞에 나서서 공연할 수 없다.” 예술가의 노년에 대해 생각할 때, 명창 김소희의 단호한 자기절제는 가장 훌륭한 가르침 중 하나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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