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 없는 한 분산개최는 없다’고 큰소리칠 때 수상하긴 했다. 대규모 적자가 뻔한데도 막무가내로 평창겨울올림픽 단독개최를 밀어붙이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다. 최근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스노보드 경기장 사용료 협상에서 정부가 드디어 ‘믿는 구석’의 실체를 드러냈다.
지난달 1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보광 휘닉스파크를 스노보드 경기장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세금 낭비 등의 우려가 없도록 협상이 잘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광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며 경기장을 하이원리조트로 옮기겠다고 큰소리쳤던 문체부였다. 아니나 다를까. 확인해보니 말만 협상이었을 뿐 실상은 ‘기업 팔 비틀기’였다. 올림픽을 치르려면 기존 슬로프보다 난이도가 높은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 공사 기간은 최소 6개월이다. 이 기간 스키장은 안전 문제 등으로 영업을 할 수 없다. 영업 손실액은 보광 쪽 추산으로 260억원이었다. 정부가 이를 곧이곧대로 인정할 리 없었다. 문체부는 평창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삼일회계법인에 재평가를 의뢰했다. 결과는 보광 쪽 추산보다 100억원이나 적게 나왔다. 문체부와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휘닉스파크가 올림픽 개최지로서 누리게 될 ‘브랜딩 효과’를 내세워 보광을 압박했다. 결국 삼일회계법인의 평가액에서 60억원이 더 줄어든 100억원 안팎에서 사용료가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문체부가 내세운 브랜딩 효과는 겨울올림픽에 맞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스키장은 올림픽 개최 직후 오히려 이용객이 줄어든다. 올림픽용 슬로프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수준의 스키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면 슬로프를 원래대로 복원해야 한다. 이 기간이 최소 3년이다. 그사이에 관광객들은 다른 스키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복원 이후 관광객을 원래 수준으로 끌어오는 것만도 벅차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지난 2월 2014 겨울올림픽 개최지 소치를 둘러본 뒤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소치의 관광 효과(브랜딩 효과) 예상은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소련 시대부터 유명한 관광지였던 로자 후토르 스키장은 “용평에 비해 한산했고, 관광객도 대부분 러시아인이었다”고 전했다. 이준호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도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선수와 코치 시절 겨울올림픽 개최지 여러 곳을 가봤는데 캘거리를 제외하곤 제대로 활용되는 빙상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모두 브랜딩 효과의 실체를 의심케 하는 증언들이다.
기업 팔 비틀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원도는 휘닉스파크에 설치될 모굴스키 등 경기용 슬로프를 보전할 것을 보광 쪽에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 유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레저산업의 속성을 잘 모르는 탓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없는 슬로프는 경제성이 떨어진다. 모굴스키 이용객은 슬로프 유지비용을 대기에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보광도 올림픽 유치로 100%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계에 평창올림픽 후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니 팔 비틀기의 강도는 더 세질 것 같다. 문체부와 평창조직위는 국민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혈세’를 줄이기 위한 모범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 분산개최 후보지로 거론되는 경기장은 흥행도 보장되는 곳이다. 굳이 팔 비틀지 않아도 기업들이 제 발로 후원자로 나설 수 있다. 가뜩이나 재계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도 평창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팔 비틀지 말자. 당하는 쪽은 진짜 아프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이춘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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