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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어느 검사장 이야기 / 강희철

등록 2015-04-05 19:17수정 2015-04-05 21:02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른바 ‘4대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4대악을 임기 안에 없애고야 말겠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척결이나 근절 같은 강도 높은 어휘들을 구사하는 그의 표정에선 결연함을 넘어 소명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새 4대악 근절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격상됐다.

4대악에는 성추행에서 성폭행까지를 아우르는 성폭력이 포함돼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 “성폭력 근절이 검찰의 제1과제”라고까지 선언했다.

대통령에 주무 부처 장관까지 소매를 걷고 나서면서 새삼스레 주목받게 된 곳은 서울중앙지검의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일 것이다. 2011년 9월 창설된 여조부는 검찰 최초의 여성·아동 범죄 전담부서다. 이름 그대로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과 성매매 등을 전담해 수사한다. 여조부는, 박근혜식 어법으로 말하자면, 성폭력 척결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이 부서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지휘하는데, 그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으로 있던 몇년 전 어느 날 밤 술잔이 오가던 어떤 자리에서 그는 한 언론사 소속 여기자의 신체 부위를 만져 문제가 됐다.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한 그 기자는 팀장에게 전말을 알렸고, 그 팀장과 동료 여기자는 검찰청에 있는 집무실로 그 부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를 만난 팀장과 동료 기자는 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이런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 등 피해 기자의 두 가지 요구사항을 전했고, 이에 순순히 동의한 그 부장은 그 내용을 ‘각서’로 정리해 기자들에게 건넸다.

그 일이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된 뒤 그 부장은 검사라면 누구나 선망한다는 보직들을 섭렵했다. 검사들 사이에선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던 ‘문화방송 피디(PD)수첩’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아니겠느냐는 말들이 돌았다. 그러나 그 사건 최종심에서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하자 ‘복’은 ‘화’가 됐다.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두 차례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 그는 연거푸 배제됐다. 지난 2월 인사는 그가 검사장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 무렵 법무부와 대검의 수뇌부도 그 부장의 과거 사건을 알았다. 비공개 조사를 통해 사실 확인도 마쳤다. 결정적 흠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검사장 승진자 명단에는 그 부장의 이름이 포함됐다. 앞서 그가 배제됐던 두 차례의 검사장 인사와 이번 인사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그와 절친한 대학 동기가 대통령을 보좌해 검찰 업무 전반을 관장하는 민정수석 비서관이 됐다(1월23일)는 점이다.

결국 ‘막차’를 타고 검사장으로 승진한 그 부장은 지금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여조부와 여조부로 배당되지 않은 성관련 사건들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부(1~8부) 전체를 지휘하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것도 물론 그의 직무다. 그래서 말인데, 그가 누군가의 성폭력 혐의를 단죄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를 그 자리에 보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법무·검찰의 최정예 인력을 성범죄 수사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앞서 김진태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윗물이 맑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상대적으로 법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때에는 더 준엄하게 법을 집행하자”며 ‘바르고 당당하면서 겸허한 검찰’을 복무 방침으로 제시했다.

강희철 사회부장
강희철 사회부장
마침 1차장의 서랍 속에선 검찰이 묵히고 또 묵힌 이아무개 부장검사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윤아무개 판사의 대학 후배 성추행 사건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강희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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