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햇볕정책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 임호일

등록 2015-04-20 18:56수정 2015-04-21 11:17

얼마 전 <한겨레>에 실린 ‘김민기와의 대담’을 읽던 중 문득 “복지가 그냥 퍼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이 문구를 대하는 순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매도한 이명박근혜 정부의 비정함과 단세포적 발상에 다시 한 번 쓴웃음과 한숨이 나왔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강자, 즉 가진 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아니 도리일 뿐 아니라 김민기의 말을 빌리면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다. 여기서 “숨표”란 수영을 하다 잠깐 물 위로 코를 내미는 순간에 쉬는 숨으로, 수영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다시 말해 이 숨이 없으면 수영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을 햇볕정책과 연결시키면 강자(남)가 강자의 위상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약자(북)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북쪽은 남쪽에 비해 약자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인도적 행위요, 우리의 존재, 즉 우리 민족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수정권의 말대로 설사 퍼주기라 한들 그것이 뭐 그리 나쁜 행위인가? 가진 자의 넘쳐나는 쌀독에서 가지지 못한 자의 빈 쌀독에 쌀을 조금 퍼주었다고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미국)에게 퍼주는 것은 미덕이고, 덜 가진 자에게 퍼주는 것은 악덕이란 말인가?

이명박근혜 정부는 지난 10년 북한 퍼주기의 대가가 핵무기 개발과 어뢰로 돌아왔고, 식량 퍼주기가 북쪽 군인들의 배만 채워줬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퍼주기는 안 된다는 것이다. 퍼주기 한 돈이 얼마나 무기 개발로 들어갔고, 퍼주기 한 식량이 인민군의 배를 얼마나 채워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쪽 인민들이 덜 굶주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인민들의 배를 채울 식량예산이 군사비 쪽으로 더 많이 전용되지 않았겠는가. 퍼주기가 아니라도 북쪽 정권은 미국이 봉쇄정책과 군사위협정책을 고수하는 한 어떤 방법으로든 재래식 무기의 약세를 핵무기 개발로 보완하려고 할 것이다.

북쪽의 인민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자매다. 우리와 똑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분단 40여년 만에 자주통일을 이뤘다. 주변 강대국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독 보수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의연하게 독일통일에 앞장을 섬으로써 평화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남북이 갈라진 지 어언 70년이 가까워오건만 통일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 봉쇄정책, 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대박’론으로는 결코 통일을 이룰 수 없다. 이 길은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의 길이 아니라 남과 북이 산산이 부서지는 쪽박의 길이다. 남과 북의 군홧발이 아닌 짚신과 고무신이 서로 만나 손과 손을 마주잡을 때 진정한 통일의 날은 올 것이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햇볕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대책 없는 퍼주기가 아니라 우리가 온전한 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다. 놀부의 고약한 심보가 아닌 흥부의 어진 마음, 즉 형제애를 가지고 북쪽을 대하면 북쪽도 호응해 올 것이고,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보면 진정한 통일대박도 터질 것이다.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사드는 대북한용이 아니라 대중국견제용이다. 어떤 이의 말대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의 긴장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루속히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과 남북 정상회담도 재개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다시금 햇볕정책을 과감하게 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민족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다.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