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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강남구의 성벽 쌓기 / 음성원

등록 2015-04-28 18:42

지난 8일 서울시청 신청사 정문 앞에 강남구민 300여명이 모였다. 몇몇이 앞에 나와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박원순 시장이 강남구민은 서울시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독립시켜 달라! 다음 선거를 생각하라!” 자리에 앉은 주민들은 “와” 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기묘한 발언이었다. 서울에서 강남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특별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이들이 한데 모여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는 셈이었다. 이들은 응당 받아야 할, 현대차그룹이 지불해야 할 ‘공공기여’의 일부를 송파구에 빼앗긴다는 데 분개했다.

현대차그룹은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터에 115층짜리 빌딩을 지을 예정인데, 그 대가로 공공에 개발이익의 일부를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 공공기여의 일부를 송파구에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에 투입하려 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차 빌딩 들어와서 차도 막힐 테고 피해를 받는 건 강남구인데, 대체 왜 송파구에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들은 정말 피해자일까? 현대차그룹의 초고층빌딩 건설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계획은 강남구에 커다란 혜택을 주는 사업이다. 이 계획대로 올림픽대로가 지하화되면, 강남구민들은 코엑스뿐만 아니라 탄천의 자연을 만끽하며 잠실운동장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이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서울시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강남에 왜 또 혜택을 주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미 땅값도 오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비싸게 한전 터를 매입하자, 주변 공시지가는 20% 정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계 도시 간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점에 자치구 간 이권 다툼보다는 서울이란 도시적 관점에서 개발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초고층빌딩 개발이 기왕에 이뤄지게 된다면, 그 개발이 지역발전을 견인해 서울에서만 찾을 수 있는 훌륭한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공공기여는 그런 관점에서 코엑스와 잠실운동장을 연계시키고, 개발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 그래서 큰돈을 낸 현대차는 물론 지역 주민들 모두 “정말 좋은 개발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강남구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과 다른 자치구들을 배제하려 해왔다. 시위하던 날 한 강남구민은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자들 틈새로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였다. “수서동 727번지에 임대주택을 짓게 돼 있는데, 지으면 안 돼요. 임대주택이 포화상태예요.” 그의 이야기는 강남의 판자촌 지역인 구룡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강남구는 그냥 우리를 내쫓고 싶은 것 같다”고 말한다.

강남구는 2008년부터 시행된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문제제기를 한다. 이 제도는 서울 각 자치구에서 재산세를 거두면 그중 절반만 해당 구의 수입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모아 25개 구청에 똑같이 배분하는 제도다. 강남구는 지난 1월19일 보도자료를 내어 “재정자립도가 올 들어 59.96%로 2011년보다 22.9%포인트나 떨어졌다”며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로 인해 매년 약 1300억원의 재산세를 고스란히 빼앗기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음성원 사회2부 기자
음성원 사회2부 기자
세계적 도시사회학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가 최근 낸 논문 ‘분리된 도시’(Segregated City)의 결론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혁신과 창조, 경제성장의 인큐베이터다. 그러나 부자들이 성벽을 쌓으며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도시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협받고 있다.”

음성원 사회2부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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