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가 최근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메이저리그 홈런 통산 4위 윌리 메이스의 기록(660개)에 도달하면 구단이 그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해야 하는지를 묻는 조사였다. 뉴욕 양키스는 2008년 로드리게스와 10년간 2억5000만달러에 재계약하면서 홈런 기록을 세울 때마다 거액의 보너스를 주기로 약속했다. 통산 3위 베이브 루스(714개), 2위 행크 에런(755개), 1위 배리 본즈(762개)의 기록에 도달할 때도 600만달러(약 65억원)씩 주고 763번째 홈런을 치면 600만달러가 추가된다. 29일 현재 659개를 때려낸 로드리게스는 1개만 보태면 보너스를 받게 되지만 양키스는 이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양키스가 지급 거부를 선언한 것은 로드리게스의 금지약물 사용 전력 때문이다. 그는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 혐의로 1년 출장정지 징계를 받고 지난해 시즌 전체를 뛰지 못했다. 양키스는 “로드리게스의 기록은 약물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대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반면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는 구단에 계약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싸움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한 인터넷 매체가 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다. 29일 현재 보너스 지급 찬성이 73%, 반대가 17%다.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 사용에 매우 엄격하다. 통산 홈런 1위 배리 본즈가 근육강화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명예의 전당 헌액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더욱이 로드리게스는 금지약물 사용에 대해 사과는커녕 출장정지 징계가 부당하다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었다. 이쯤 되면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을 법한데 팬들은 의외로 그의 ‘과거’를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분위기다.
팬들이 처음부터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 2월 다른 인터넷 조사에서는 51%가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복귀전 때 상당수 양키스 팬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내 손주의 롤모델이 돼서는 안 된다”는 70대 팬의 노기 띤 발언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불과 한달여 만에 팬심이 확 바뀐 이유는 뭘까.
로드리게스는 올해 불혹에 들어섰지만 전성기 못지않게 맹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29일 현재) 19게임에 출장해 홈런 5개로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7위, 팀 내 2위를 달리고 있다. 한 시즌을 통째로 쉬었는데도 체력적으로 절정에 올라 있는 20~30대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의 진정성이다. 지난 2월 그가 스프링캠프에 복귀했을 때 구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구단주는 그의 사과 방문을 거절했고, 그의 3루수 자리에는 다른 유망주가 거액에 영입됐다. 코치진은 로드리게스가 단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1루수를 맡아야 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흘렸다. 팀에 복귀해도 설 자리가 없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그럼에도 로드리게스는 묵묵히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홈런 보너스 논란에도 “내겐 오직 야구가 중요하다”며 언급을 자제한다. 현지 언론들은 “로드리게스가 달라졌다”며 주요 뉴스로 다루고, 팬들은 그가 타석에 설 때마다 환호한다.
‘팬심’만큼 변덕스러운 것도 없다. 영원히 떠난 것 같은 팬들의 마음도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냉대와 수모쯤은 눈 질끈 감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로드리게스는 몸으로 말한다. 입으로는 “내가 무언가를 이룬다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놀랄 것 같다”며 겸손해한다. 한국 수영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한 박태환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이춘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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