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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혜리, 소로스, 권문석 / 이제훈

등록 2015-05-03 18:34수정 2015-05-03 18:34

여기 세 사람이 있다. 혜리, 소로스, 권문석. 나이, 직업, 삶의 이력이 서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다. 퍼즐을 맞춰보자.

# 혜리: 1994년생. 본명 이혜리. 걸그룹 걸스데이의 구성원이자 연기자. 엠비시의 <진짜 사나이>로 유명해졌다. 취업포털 알바몬의 광고모델로 나선 뒤 ‘맑스돌’ ‘노동돌’이라 불리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 이런 시급. 쬐끔 올랐어요, 쬐끔. 370원 올랐대. 이마저도 안 주면….” “알바를 무시하는 사장님께는 앞치마를 풀어 똘똘 뭉쳐서 힘껏 던지고 때려치세요. 새 알바 찾아. 시급도 잊지 말고 챙겨 나가세요.” 각 15초짜리 이 두 광고는 단숨에 광고 인기 순위 사이트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최저임금 인식 확산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고용노동부가 감사패를 줬다. 알바몬이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듯 혜리도 노동운동가가 아니다. 알바몬은 경쟁사보다 낮은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 했고, 혜리는 계약에 따라 모델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요즘 청소년은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은 몰라도 ‘혜리의 최저시급 5580원’은 안다. 500만 알바노동자의 존재,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가 전체 노동자의 12.1%(227만명)인 현실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권문석: 1978년생. 알바연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2013년 6월2일 새벽 심장이 멈췄다. ‘기본소득 도입,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을 외친 열혈 운동가이자 알바노동자의 영원한 벗. 2013년 1월2일 그가 정성스레 준비한 알바연대 창립 기자회견에 기자는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알바노조(옛 알바연대)의 존재를 모르는 젊은 기자는 거의 없다. 너무 일찍 밤하늘의 별이 된 그는, 민주노총이 내년치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자고 공식 요구하고 ‘혜리의 최저시급 5580원’이 유행어가 된 현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 조지 소로스: 1930년생.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펀드매니저이자 갑부이자 기부계의 큰손. 80억달러 넘게 인권·복지·교육 사업에 기부하고도 재산이 10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 ‘두 얼굴의 사나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자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지지한다.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유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 사회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폭동이 날 위험이 높다.” 소로스가 착한 부자라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부자 모임’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도 “소득 불평등 문제가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 우려한 바 있다. 오바마를 ‘좌빨’이라 여길 어떤 이들한테는, 대기업 총수에게 ‘임금 좀 올려줍쇼’ 하며 머리를 숙이는 극우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복잡하게 말할 게 없다, 이제 임금을 올려야 할 때”라며 재계를 압박하는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보기를 권한다. 왜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세계의 리더들이 소득 불평등을 문제삼겠는가? 불평등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하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지속될 수 없으며 자신들의 기득권도 유지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일 터. 80명의 재산이 35억명의 재산보다 많은 세상이 어떻게 지속가능하겠나?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그러나 한국의 경제5단체는 최저임금 인상 반대 기자회견 따위나 하려 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전엔 ‘불평등’이란 단어가 없다.(청와대 누리집에 공개된 대통령의 취임 이후 발언을 보면, 한국 사회와 관련해 ‘불평등’이란 단어를 쓴 사례가 단 한번도 없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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