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아주 특별한 생일모임이 있었다. 이웃에서의 생일모임은 원래 특별하다. 주인공 없이 치러지는 생일모임이어서다. 이번엔 더 특별했다. 생일 주인공의 친구들조차 대리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날 생일 주인공은 유난히 친구가 많지 않은 아이였다.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절친 몇 명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아이의 절친들은 모두 함께 별이 되었다. 이웃에서 생일모임 자원봉사를 하는 이웃 치유자들은 눈물 많은 이모처럼 날렵한 흥신소 직원처럼 아이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친구 중에선 중학교 때 친구 1명만 생일모임 참석이 확실했다. 노심초사하던 이웃 치유자들의 안간힘은 결국 절친들의 ‘대리참석’으로 이어졌다. 생일 주인공인 아이와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지금은 별이 된 아이의 부모들이 생일모임에 절친의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웃의 생일모임은 단순한 생일잔치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마음속에 아이를 편안하고 생생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치유프로그램이다. 생일모임을 진행하는 치유자 정혜신은 참석자들에게 아이의 어느 때 눈빛이 가장 매력적이었는지, 웃음이 얼마나 유쾌했는지,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은 어디였는지, 몰래 한 짓이 무엇이었는지 울고 웃으며 묻는다. 친구, 선배, 친척, 선생님, 동네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아이의 삶이 온전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과정은 슬프고 아름답다. 그런 때 친구들의 증언은 결정적이다. 부모들은 잘 몰랐던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집에선 늘 어리광만 부리던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선 엄마 리더십의 대명사였다는 일쯤은 다반사다. 숫기없고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만취의 경험이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후 그런 것도 해보고 떠나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부모도 있다.
이번 생일모임에선 유가족 엄마들이 그런 친구의 역할을 대신 했다. 엄마들은 생일 주인공인 아이에게 온힘을 다했다. 아무도 자기 아이 얘기를 중심에 놓지 않았다. 생일 주인공인 아이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어떤 음식을 잘 먹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자기 아이는 철부지였는데 그 아이는 너무 의젓하고 효자스러워서 어쩜 저렇게 잘 자랐는지 부러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절친이라면서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도 많았다며 흉을 보는 대목 등에서 간간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대체로 눈물 속에서 대리 참석한 절친(엄마)들의 얘기를 들었다. 슬픔의 품앗이가 있다면 그런 것이었을까.
더 얼마 전. 유가족 부모들이 삭발을 하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맞으며 광화문에서 노숙하고 있던 날 생일인 아이가 있었다. 이 와중에 아이의 생일모임에 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엄마에게 삭발 농성 중인 엄마들이 무슨 소리냐며 빨리 집에 가서 이쁘게 하고 생일모임에 참석하라며 등을 떠밀었다고 했다. 그날 생일모임은 그 아이의 엄마로부터 광화문 투쟁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를 악물고 아이의 삶에 더 집중했다. 그 순간 그곳은 기억투쟁의 현장이었다.
어떤 경우엔 얼핏 한가해 보이는 곳이 가장 격렬한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싸움터다. 치유와 싸움은 2인3각 경주와 흡사하다. 마음이 급하다고 어느 한쪽이 먼저 가려 하면 완주할 수 없다. 제대로 싸우려면 치유와 싸움의 동시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필요성은 더 커진다. 이웃에서 생일모임을 할 때마다 생일치유자들이 되뇌는 말은 ‘천천히, 오래’다. 그게 이 거대한 의문사 투쟁에서 고꾸라지지 않고 끝까지 가는 길이라고 믿어서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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