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오이시디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등 총량지표로 보면 한국은 나름 풍요롭지만, 삶의 질은 낮고 캄캄하다. 낯익은 보고다. 불안을 표상하는 지표들은 차고 넘친다.
정치컨설팅기관 매시스(Masses)는 현재 한국 대중 여론의 키워드로 ‘불안’에 착목했다. 창립기념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49.6%, 즉 2명 중 1명이 일상적으로 경제불안에 시달린다.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는 61.6%, 하지만 미래에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전망은 57.1%로 낮아진다. 변화와 진보는 지금은 힘들지라도 내일은 나아지리라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그래서 ‘불안사회’의 징후가 함축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위험하다. 이 조사는 불안사회의 책임도 물었다. 정부가 국민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무능하다는 응답이 무려 70.3%, 유능하다는 응답은 17.9%에 그쳤다. 대중들은 이 불안이 홀로 감내해야 할 개인 책임이 아니라 정부,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다.
불안이 대중 여론의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신자유주의화에 따른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대중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동선이라는 가치보다는 제 한 몸의 생존이 위태롭고 절박해졌다. 불안이 심화될수록 대중들의 정치적 요구는 먹고사는 문제로 집중되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 대신 민생이 앞서게 되었다. 2007년과 2012년 보수정부를 선택한 대중 요구의 근저에는 민생문제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가치를 저버린 염치없는 대중이라고 비난해도 될까? 불안할수록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대중심리다.
이런 흐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정치적 사건’을 통해 대중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불안을 다독이기보다 부채질하는 정부, 더 나아가 시스템의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불안은 더 많은 연대와 협력, 평등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올해 초 <한겨레> 신년조사에서는 75.3%가 빈부격차가 적고 사회보장이 잘된 사회, 평등한 사회를 갈망했다. 경제적 풍요에 대한 요구는 14.8%에 그쳤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런 변화의 흐름들이 정치적 요구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시스 조사는 불안을 해결할 유능한 경제정당에 대해 질문했는데, ‘분배를 잘하는 정당’(44.5%)에 대한 요구가 ‘성장을 잘하는 정당’(38.6%)보다 높았다. 불안의 원인으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주목하고, 해결을 위한 정치적 주체로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같은 조사에서 대중들은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할 정당으로 민주진보세력(28.5%)보다 보수안정세력(37.9%)을 꼽았다. 이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역설이자 현주소다. 대중이 모순적일까? 불안에 고통받는 대중이 저토록 불안한 야당을 지지할 리는 없다. 야당 부재, 정치 부재의 비극 속에서 한국 대중들은 정치를 통한 사회 진보가 아니라 또다시 각자도생이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 선택의 몫, 혹은 고통은 결국 대중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총선까지 11개월 남짓이다. 얼마 전 <한겨레> 창간조사에서는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우세했다. 야당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 짧은 기간이 야당이 처절한 자기부정의 실천을 기울일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사실이다. 야당이 이것조차 모를까봐 참 불안하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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