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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한국과 우즈베크의 깊은 인연 / 박상남

등록 2015-05-27 19:08

고대로부터 중앙아시아는 제국들의 야망과 좌절의 교차로였다. 대륙의 중앙이라는 운명적인 위치는 언제나 예외 없이 팽창을 욕망하는 제국들이 기필코 다다르려 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당의 서역정벌, 몽골 기마병의 영광과 종말이 모두 이곳 초원의 바람 속에 살아있다. 초원의 서사시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운명처럼 반복되고 있다. 제2의 서역정벌이라 할 중국의 ‘일대일로’, 제국의 불씨를 살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연합’ 창설이 초원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러한 민감한 시기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5월27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현직 국가원수로서 8번째 방한, 13번째 정상회담이라는 국제사회의 유례없는 기록이라고 한다. 열강의 러브콜에도 대통령 당선 직후 첫 방문지로 또다시 한국을 선택할 만큼 그의 변함없는 한국 사랑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그는 평소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그의 호감은 무엇보다도 자국의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려는 절박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수십조원의 투자를 약속하는 중국 등 주변국에서도 자본과 기술을 유치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우즈베키스탄은 멀리 떨어진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것인가? 이유는 중앙아시아의 엄중한 국제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신생독립국인 우즈베키스탄은 정치적 독립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연방권 국가들의 경제적 재결속을 원하고 있고,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는 중앙아시아 약소국들의 안방경제로 물밀듯이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 의존도가 커진다는 것은 또다른 종속을 의미한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은 그동안 러, 중과 협력하면서도 일정 부분 거리감을 두는 중립외교를 구사해 왔다. 동시에 외부를 향한 ‘제3의 협력벨트’ 구축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처한 입장과 너무도 닮아있다.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패권적 야심이 없으면서도 최고의 산업기술과 발전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긴 역사, 문화적 호흡에서 보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깊은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

놀랍게도 양국은 고대 시대에 안보적 동맹관계에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대 고분에서 발견된 7세기께 벽화에는 고구려 사신이 등장한다. 이는 당시 고구려와 돌궐이 동과 서쪽에서 당을 견제하고 있었던 국제질서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의 사신은 수천킬로의 초원을 달려가 안보 문제를 논의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 포위 전략이었다. 돌궐이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구려 역시 나, 당 연합군에 의해 종말을 맞이했던 역사는 양 지역이 안보적 공동 운명체였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양국의 미래에 많은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다. 카리모프 역시 이 벽화를 언급하며 양국의 깊은 유대감을 강조한 바 있다.

박상남 한국 유라시아학회 회장
박상남 한국 유라시아학회 회장
뿐만 아니라 양국은 북방유목, 알타이 문명에 공통의 뿌리를 두고 있어 현재에도 언어, 문화적으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유물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양 지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문명적 유사성과 친근감은 양국관계의 큰 자산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과 우즈베키스탄의 이해가 상호 호응하며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카리모프의 각별한 한국 사랑과 양국의 깊은 인연은 그를 둘러싼 정치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한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박상남 한국 유라시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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