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여야가 힘겹게 통과시켰다 했더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정국이 국회법 개정안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국회가 시행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에 수정·변경 요구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그래서 위헌인지를 두고 여야와 학계는 물론이고, 법률을 다루는 국가기관인 국회사무처와 법무부도 견해가 첨예하게 갈린다.
이번 논쟁은 임기 전환점을 맞이하는 청와대와, 총선을 10개월 앞둔 여야 정치권이 ‘일수불퇴’로 맞붙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를 보노라면 흥미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자꾸 든다. 끊임없이 국회와 여야를 때리고 정치 혐오를 부추겨 이를 권력 유지의 버팀목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4·29 재보궐선거 때 참여정부 시절 특별사면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할 때도, 지난달 ‘공안통’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할 때도 ‘정치 개혁’을 강조했다. ‘그게 정치 개혁과 무슨 상관인가’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갈수록 그 답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정치 개혁’을 말함으로써 ‘정치는 개혁 대상’이라는 인식을 퍼뜨리고, 마치 청와대가 정치 개혁의 주체인 것처럼 각인시키려는 의도라는 것 말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불신을 파고드는 전략이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은 “국민과 경제에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며 국회를 ‘반국민 집단’쯤으로 몰았다.
‘청와대 대 국회’, ‘박근혜 대 여당 비박 지도부’의 싸움이 시선을 모으는 사이, 중요한 대목들이 뒷전으로 밀렸다. 애초 국회법 논란의 출발점이 된 ‘법 위의 시행령’ 문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세월호 참사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의 핵심 보직인 조사1과장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유족의 주장을 정부가 외면한 데서 비롯됐다. 정부가 안 들어주니 여야가 길을 트고자 국회법까지 개정한 것이다. 이 정부는 누리과정(3~5살 무상교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약해놓고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통해 지방으로 떠넘기고도, ‘몸통(법률)을 흔드는 꼬리(시행령)’라는 지적에 합당한 설명도 없다.
‘삼권분립’이라는 말을 ‘책임 총리’나 ‘검찰 독립’처럼 현실에서 찾기 힘든 공허한 수사로 만들어버린 데 대한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3명이나 정무특보로 임명해 삼권분립 침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 특보들이 공무원연금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의 가교 구실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오늘의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무특보들이 오히려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여야 합의를 뒤집거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훼방에만 앞장선다”는 비판을 들을 만도 하다. 한때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총리를 비롯해 6명을 의원으로 채워서 ‘친박 의원내각제’라는 말을 탄생시킨 것도 박근혜 정부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런 점들은 외면한 채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법 앞에 냉정하고 엄밀해야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우리 것 아닌데 왜 가져왔냐’며 물건 가져온 사람을 사정없이 패는 모습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나 일부 의원들의 진짜 의도가 ‘눈엣가시’ 같은 당 지도부를 흔들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파다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국민 바라보며’ 국회 때리기를 계속할 것이고, 대중의 마음속엔 ‘국회의원들이 또 사고 쳤구나’, ‘정치인들 또 싸우는구나’ 하는 혐오와 냉소가 더 커질 것이다.
황준범 정치부 기자 jaybee@hani.co.kr
황준범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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