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나라에 불안감을 퍼뜨리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증상은 고열과 기침, 호흡 곤란 등이다. 여기에서 고열이란 심부 체온(직장이나 구강 내 체온) 38.5도 이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체온계가 없던 옛날에는 고열을 어떻게 판정했을까?
몸에서 열이 느껴지거나 코가 막히거나 기침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쓰리거나 하는 등의 증상들은 환자의 몸에서 일어나며 당연히 이 증상들을 통해 몸의 이상을 판단하는 주체도 환자 본인이다. 옛사람들은 자기가 느끼는 증상들을 통해 자기 몸에 생긴 질병의 종류를 추정하고 치료방법을 정했다. 아는 병이면 아는 요법을 썼고, 모르는 병이면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 치료법을 찾았다. 그 ‘알 만한 사람’이 다 의사는 아니었다. 집안 어른일 수도, 동네 노인일 수도, 무당일 수도 있었다. 그 ‘의료인’들은 대개 환자와 몇 마디를 나눈 뒤 바로 이마에 손을 대곤 했다. 이마의 온도는 환자 개인의 느낌과 타인의 지식이 소통하는 통로였으나, 미열과 고열 사이에 명확한 경계는 없었다.
사람 몸 안에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여 숫자로 표시하는 기계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체온계다. 이 기계는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1867년에야 영국인 토머스 클리퍼드 올벗에 의해 실용화됐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 서양의학과 함께 도입되었는데, 1920년대 중반쯤에는 일부 부유층 가정의 상비품이 될 정도까지 보급되었다. 1927년 4월 <매일신보>는 낡아 고장 난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서는 함부로 해열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많아 ‘체온계병’이라는 신종 질병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현대의학은 수많은 진단기기와 시약을 이용하여 인체를 수치들로 분해한다. 체온,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는 환자 개인의 느낌과 무관하게 그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구성한다. 이 객관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몸 상태에 대한 판단의 주권을 기꺼이 의학지식에 양도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체온계는 이런 시대를 앞장서 연 물건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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