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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시내버스

등록 2015-06-15 18:55

지난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서울 인구는 50배 가까이, 면적은 10배 가까이 늘었다. 늘어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밀착시켜야 했고, 넓어진 도시를 단일 생활권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압축해야 했다. 이 밀착과 압축이라는 초거대 도시화 과업을 수행하는 데 앞장 선 것이 과밀주택, 고층아파트와 엔진 달린 탈것들이다. 특히 시내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은 공간을 압축하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들을 밀착시키는 도구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한 날짜는 1928년 4월22일이다. 14개의 좌석과 8개의 입석 승객용 손잡이를 장착한 버스가 서울 거리에서 운행을 개시하자, 택시보다 크면서도 요금은 싼 자동차를 타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더구나 버스에는 젊은 여차장이 동승했다. 하지만 버스의 인기는 급속히 시들해져서, 곧바로 도시민들의 대표적인 불평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시내버스에 불평을 늘어놓은 주된 이유는 극단적인 밀착과 원치 않는 접촉에 있었다. 사람 관계는 일차적으로 공간 척도로 표현된다. 사이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할 때의 ‘사이’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뜻하며, ‘친밀’이란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관계를, ‘소원’이란 서로 멀리 떨어진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버스는 ‘소원’보다도 훨씬 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밀착시켰을 뿐 아니라 빈번히 접촉시키기까지 했다. 특히 전차가 철거된 1968년부터 수십년간 시내버스의 별명은 콩나물시루였고, 승객들은 거의 매일같이 콩나물이 되었다가 시루에서 빠져나오는 체험을 했다.

거대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타인에 대한 거리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모르는 사람들과 밀착하지만, 그 밀착은 친밀감은커녕 불쾌감과 때로는 공포감까지 안겨준다. ‘메르스 감염자와는 2미터 이상 떨어져라’ 같은 권고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현대인은 거의 없다. 두려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참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깨달았으면 한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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