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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통일은 과정이다 / 권혁철

등록 2015-06-16 18:50

벌써 15년 전 일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이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남북 군사당국간 회담도 열렸다.

당시 북한군 실력자 ㄱ이 남북 군사회담을 하러 남쪽으로 내려왔다. ㄱ의 영접과 안내를 ㄴ 장군이 맡게 됐다. ㄴ 장군은 이 임무가 너무 낯설었다. 30년 넘는 군생활 동안 그에게 북한군은 섬멸해야 할 적이었다. 애창하는 군가가 ‘멸공의 횃불’인 ㄴ 장군이 졸지에 북한군의 ‘가이드’가 된 것이다.

ㄱ을 마중 나가기 전 ㄴ 장군은 대학생 아들의 휴대전화를 챙겼다. 업무용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예비 통신수단 확보 차원이었다. ㄴ 장군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ㄱ과 승용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50대 남성 둘 다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띠리리리~~’ 어색한 침묵을 깨고 갑자기 아들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ㄴ 장군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전화 아닌가요?”

“아, 나는 ×× 아버진데, 지금은 바빠서 그만 끊자.”

“잠깐만요. 지금 ××는 어디 있나요.”

“그건 모르겠고, 지금 통화할 수 없으니 이만 끊자.”

“××에게 이 말 좀 전해주세요. 다음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연기하려고 해요.”

ㄴ 장군은 몇차례 “통화하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아들 친구는 이 얘기 저 얘기를 계속했다. ㄴ 장군은 간신히 전화를 끊고 “요즘 남쪽 애들이 이렇게 막무가내입니다”라고 말했다. ㄱ이 “젊은이들 버릇없는 것은 우리 북쪽도 마찬가집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남북의 기성세대 두 사람은 버릇없는 젊은이들을 성토하는 이야기를 한동안 나눴다. 나중에 ㄴ 장군은 “아들 친구의 전화가 아이스 브레이킹(어색함 깨기)에 도움이 됐다. 북한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 남북이 다른 점도 많았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같은 점도 있더라”라고 말했다.

ㄴ 장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남북관계에서 차이점을 인정하고 같은 점이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의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북이 서로 차이를 들추고 상대를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세현의 통일토크>에서 70년대 냉전시기 남북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남북이 앞뒤 인과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상대에게 책임을 넘길 수 있는 지점 언저리에서 가운데를 딱 잘라 ‘상대방이 이러이러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북측(남측)의 책임이다’ 이런 식의 비난 성명전을 계속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든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얼어붙었다. 이후 남북은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는 전적으로 북측(남측)의 책임이다’로 끝나는 성명을 내고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통일 대박론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던 6·15 15돌 남북 공동행사가 결국 물거품이 됐다. 나는 남북관계를 반전시킬 남은 카드가 오는 8월 광복 70년 행사라고 생각한다. 이마저 무산되면 박근혜 정권 말까지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워질 것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통일은 과정이라고 한다. 통일은 남북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과정이다. 만나야 통일을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남북대화에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적의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의 한쪽 손을 붙들고 있으면 그가 나를 칠지 안 칠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 nura@hani.co.kr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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