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청송 직업훈련교도소의 한 독자께서 <한겨레> 편집국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꽃무늬 편지지에 한자 한자 또박또박 정성스레 쓴 편지였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수용생활 하면서 봐오던 한겨레에 프로야구 소식이 적은 게 불만이라서 스포츠신문이 함께 배달되는 신문으로 한번 바꿔봤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한겨레를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신문들과 달리 아부하지 않고 뻥치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편지는 “변치 않고 계속 애독할 테니까 야구 소식 좀 더 실어주길 부탁한다”는 말로 끝나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한겨레가 프로야구 소식을 많이 전해드리지 못하는 건 편집 방침 때문이 아닙니다. 신문 인쇄 마감 안에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지 않아 부득이하게 경기 소식을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쇄 마감을 야간경기가 끝난 뒤로 늦추면 되지만, 그럴 경우 신문 배달에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종편을 운영하는 돈 많은 신문사들처럼 각 지역에 자체 인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마감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겨레는 그런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독자 여러분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초기에 프로야구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프로야구가 전두환 독재정권의 ‘스포츠 우민화’ 정책의 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1981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프로 스포츠 출범을 지시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2년 3월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엠비시(MBC)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심판 복장을 한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시구를 한 모습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풀뿌리 스포츠에서 자연스럽게 프로 스포츠로 성장한 미국과 달리 한국 프로야구의 정통성은 매우 취약한 셈입니다. 1987년 6월항쟁이 낳은 한겨레가 프로야구를 보도하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프로야구를 제대로 대접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프로야구는 이제 국민 스포츠가 됐습니다. 2009년 한해 관중 600만 시대를 열더니 2011년에는 7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해 메르스 사태로 관중 수가 조금 줄었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기는 국민 레저로 자리잡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독재정권의 우민화 정책의 산물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낸 것입니다. 월드컵과 에이(A)매치(국가대항전)에만 관중이 몰리는 프로축구에 견주면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사가 된 프로야구를 외면한다는 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문의 프로야구 보도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습니다. 모바일 혁명에 따른 변화입니다. 야구팬들은 이제 다음날 조간신문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경기 종료 직후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같은 포털사이트와 각종 야구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마치 중계방송을 본 듯 경기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맞춤식 해설과 선수·감독의 다양한 신변잡기까지 콘텐츠도 풍부합니다. 고성능 중계 카메라가 제공하는 스트라이크 존과 타구 방향 분석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무리 ‘천의무봉’ 경지의 글이라 할지라도 생생한 동영상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비단 스포츠 보도뿐만이 아닙니다. 신문은 지금 전 보도 영역에 걸쳐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이춘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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