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 어느 여름날, 당시 20대 중반이던 기자이자 소설가 심훈과 연극 연출가 박진은 대낮부터 만취해서 종로 네거리에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흰 헬멧을 쓴 일본인 순사가 네거리 한복판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심훈이 느닷없이 달려가 “이놈아. 너 왜놈이 우리보고 어째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느냐? 우리는 갈 길을 알고 있다!”고 소리 지르고는 헬멧을 빼앗아 제 머리에 썼다. 일순 어이없어하던 순사가 “바카야로”라 외치며 달려들자, 그는 우미관 골목길로 도망쳤다.(박진의 회고)
서울 거리에 교통순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0년 6월,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한 지 10년 남짓 되었을 때였다. 큰길을 자동차에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일본인 순사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지시까지 받게 되었으니, 예민한 사람이라면 보행이라는 극히 기본적이며 일상적인 동작에서조차 식민 통치의 그림자를 느꼈을 법하다.
1934년 말, 서울 남대문로 네거리에 전기 교통신호등이 처음 설치되었고, 이듬해 봄에는 종로와 을지로 네거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교통순사나 이 물건이나 일본산인 건 매일반이었으나, 이 물건에게 달려가 “네까짓 게 뭔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느냐?”고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인격체의 지시를 받는 데 굴욕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기계의 지시를 받는 데에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차로나 건널목에서는 이 물건을 주시해야 한다는 ‘통행인의 의무’를 자연스럽게 수용했고, 빨강 파랑 노랑에 대한 조건반사 동작도 금세 익혔다.
신호등은 자동차의 증가에 비례하여 계속 늘어나 오늘날 전세계 도시 도로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물건이 되었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부모나 스승, 직장 상사의 지시보다도 신호등의 지시를 훨씬 자주 받는다. 신호등의 출현은 기계가 사람의 동작을 통제하는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현대는 기계의 리듬이 지배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사람이 기계와 비슷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