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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연평해전’을 내가 읽는 법 / 김영희

등록 2015-07-08 18:32

윤 일병 사건이나 강원도 전방부대 총기사고, 예비군 부대 총기사고 같은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신문을 보다 “혹시라도 군대 가서 이상한 일 있으면 즉각 엄마 아빠에게 알려야 해”라 말하면 “이런 일 생겼으니 위에서도 신경써서 바뀌지 않을까요”라고 유들유들 말하는 아이들은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속이 터진다.

어느새, 큰아이가 신검을 코앞에 둔 나이. ‘엄마’로서 본 영화 <연평해전>은 ‘별점’ 매기듯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었다. 전반부 참수리 357호 군인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편집을 어찌한 건지 점프를 거듭한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 못할 바 아니다. 후반부 전투신의 컴퓨터그래픽도 요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박 상병의 어머니를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하는 등 실제와 다른 부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극적 장치다. 군 협조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알기에, 객석 점유율 대비 스크린 수 폭증세가 다른 흥행작들에 비해 유난하다거나 메르스로 휴가는 미뤄져도 이 영화 단체관람은 간다는 군인들 얘기가 들려와도 ‘예상했던 바’라며 넘겼다.

이렇게 너그러웠던 건 단 하나,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의 환호성 속 지도자와 국민들은 그들을 잊었다’ - 이런 식의 누군가를 추궁하는 듯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확인되지 않는 평양의 작전 수립 장면이나 북한군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지워내고 퍼붓는 포탄 속에 지금 살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절박함에 초점을 맞췄다면, <연평해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을 작품이다. 도대체 군에 간 젊은이들 중 몇명이나 고속정 안으로 쏟아지는 포탄이 훈련이 아닌 실재가 될 것이라고 상상을 했겠는가. 그 순간이 그들에겐 얼마나 큰 공포였을까. 내겐 그것만이 보였다. 그건 유족들의 절규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엄마’인 동시에, 우발적 충돌이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국민이라는 자각 때문이다. 교전이냐 해전이냐, 패전이냐 승전이냐 같은 논쟁이 이런 죽음이 없도록 충돌을 최대한 억제하는 노력보다 중요할 순 없는 법이다.

콜린 파월 장군이 신중해했던 이라크전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밀어붙였듯, 때론 전쟁을 모르는 민간인이 군인보다 위험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이례적으로 연일 1면 또는 전면을 할애해 <연평해전> 기사를 내보내며, 진영논리에 빠진 이들이 이 영화를 외면한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모양새는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1년 전인 2009년 2월, 이 신문은 합참과 해군 등 군 당국이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에서 도발할 경우 자주포와 함포, 육해공 전력을 총동원해 초기에 제압한다는 계획을 보도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씨는 “이것이 서해 일원의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장치인 비례성의 원칙이 무너지고 비대칭 국면이 초래되는 결정적 계기”였으며 “정부 내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대북 강경 메시지가 조선일보를 통해 북한에 전달된 순간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서해상의 분쟁 양상은 근원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지적(<위기의 장군들>)했다. 이런 신문의 ‘오버’가 오히려 이 영화에 정치적 색을 덧입히고 있는 건 아닐까.

김영희 문화부장
김영희 문화부장
지난해 각국의 문화·예술 보도를 놓고 한·중·일 3개국 언론인들이 벌인 포럼에서, 중국 어느 관영매체 간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장 위기에 놓인 어느 ‘훌륭한’ 영화에 대해 자신들이 대대적 캠페인을 벌이고 각 성에 협조요청을 보내 영화가 대성공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 언론인들은 “사회주의 국가니까”라며 웃어넘겼다. 요즘 같아선 웃지도 못할 것 같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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