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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송아지 태어나다 / 김계수

등록 2015-07-13 18:44

점심을 먹고 고추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한동네에 살고 있는 장모님이 전화를 하셨다. 지금 막 송아지를 낳았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것이다. 처가댁 어른들이 오랫동안 소 두세 마리를 키우시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한 마리만 남긴 것을 우리가 물려받아 처갓집 마구간에서 키우고 있던 터였다. 대문을 들어서니 장인어른께서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보시고 달려오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하신다. 노인들에게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작년에는 소가 수태한 것으로 믿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가 허탕을 치는 바람에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이 더없이 반가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미 소는 사료만 축내고 1년을 허비한 것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듯 예정일을 열흘 이상 앞당겨 새끼를 낳았다.

송아지는 물을 흠뻑 뒤집어쓴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있고, 어미 소는 태가 아직 빠지지 않아 엉덩이에서 길게 늘어진 채로 꼬리와 겹쳐 있었다. 부랴부랴 바닥에 볏짚을 깔고 장애물을 치운 뒤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장모님이 건네준 수건으로 송아지 몸의 물기를 닦아주는데 송아지는 콧속에 있는 이물질이 답답했던지 연신 푸르릉거리고 숨이 꽤나 가쁘다. 모든 동물의 출생은 그 개체에게 엄청난 모험일 것 같다. 어미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모든 것을 공급받다가 짧은 시간 안에 허파의 기능을 작동시키고 스스로의 힘으로 산소와 영양을 조달해야 하는 일이니 출생은 커다란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것이다. 연약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송아지의 거친 호흡이 새삼 경이롭다.

송아지에 대한 기대로 장모님이 그동안 얼마나 잘 먹였는지 어미 소는 털이 짧고 윤기가 반지르르했다. 태가 아직 엉덩이에 걸려 있어 어미가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나는 끈적한 물방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장모님은 송아지가 암컷인지 수컷인지가 몹시 궁금했다. 탯줄의 붉은 흔적이 한 뼘가량 남아 있는 송아지의 아랫배가 밋밋한 것이 암컷이다. 작년에 송아지 한배를 놓친 애석함이 아직껏 남아 있는 장모님은 실망이 크신지 ‘저×은 맨날 암놈만 낳는다’며 퉁을 놓으셨다. 요즘 송아지 값은 수컷이 암컷보다 많게는 50만원 정도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건으로 송아지의 주둥이와 코를 훔치며 콧잔등을 살폈다. 다행히 검은 점이 박혀 있지 않다. 검은 점이 있는 소는 먹성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한우로서 혈통이 순수하지 않다고 해서 소장수들이 값을 깎으려는 빌미가 된다.

송아지는 까만 눈동자 위에 긴 속눈썹이 가지런해서 모양내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탐낼 만한 모습이다. 정수리의 털은 채 마르지 않아 곱슬곱슬한 모양이 미장원에서 이제 막 파마를 하고 나온 시골 아주머니들의 머리를 꼭 닮았다. 아직 흙을 디뎌보지 못한 발톱은 허옇고 부드러우며 발바닥은 도톰하다. 이빨은 태어날 때 아래턱에 이미 앞니 두 개가 나 있다. 다 큰 소도 앞니는 아래턱에만 있고 위턱은 잇몸뿐이다. 풀을 쉽게 뜯을 수 있게 하려는 조물주의 고안이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어미는 까끌까끌한 돌기가 촘촘한 혀로 새끼 몸이 들썩거릴 만큼 격렬하게 핥는다. 어서 일어나서 젖을 빨라는 듯하다. 물기가 웬만큼 마른 새끼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데 다리는 아직 힘이 붙지 않아 팔자로 벌어져 후들거린다. 나는 새끼를 안아다 젖꼭지에 주둥이를 갖다 댔다. 이게 혹시 새끼가 자립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젖을 빠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은 어쩔 수 없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어미는 잠시 후 발길로 새끼를 밀어낸다. 장인어른께 알리니 어미가 간지럼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이라 한다. 이렇게 거대한 짐승도 간지럼을 타는구나.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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