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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청바지

등록 2015-07-13 18:59


1976년, 당시 내가 다닌 중학교에는 여교사가 두 분밖에 없었다. 어느 날부터 한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결혼해서 신혼여행 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해당 과목 수업시간을 몇 주 동안 자습으로 때운 뒤에야 그분이 갑작스레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기 중 수업 결손을 감수하면서까지 학교 쪽이 그 교사를 해고한 이유는 ‘청바지를 입고 교단에 선 것’이었다.

청바지는 그 창안자가 알려진 몇 안 되는 의복 아이템으로, 1850년대 독일계 미국인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질긴 천막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광산 노동자들에게 판 데에서 기원했다. 처음에는 갈색이었으나 곧 더러워져도 눈에 잘 안 띄는 청색으로 바뀌었다. 청색은 육체노동자인 블루칼라의 상징색이기도 했다. 이후 한 세기 이상, 청바지에는 강인함, 질김, 거침, 깨끗하지 않음 등의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이는 ‘연약하고 정숙한’ 여성성과는 명백히 대립하는 이미지였다.

1968년 5월, 유럽 대학생들이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주조하려는 대량생산 시대의 국가권력과 기성 권위 전반에 대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들은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치며 인간의 의식과 행위를 제한하는 기성의 모든 장벽들을 허물고자 했다.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자가 남성 육체노동자의 옷을 입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68혁명의 파도는 전세계로 확산되었지만, 한국에는 파도의 끝자락만 겨우 닿았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격으로, 혁명이 고취한 저항정신은 ‘청년들의 반항기’로 격하되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국가권력이 직접 금지했고, 여성 청바지는 사회 도처의 미시권력이 면밀히 감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대중은 끝내 ‘권력의 저항’을 분쇄했다.

오늘날 청바지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 성적 취향, 장애 여부를 따지지 않는 ‘완벽한’ 의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이 아이템에 담겨 있던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지향이 탈색되고 찢겨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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