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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미군기지에 항거하는 미술관-오키나와에서 케테 콜비츠를 보다 / 서경식

등록 2015-07-16 18:33수정 2015-07-17 11:55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74살의 콜비츠는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를 제작했다.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녀는 자식들을 외투 속에 품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팔을 활짝 펴 소년들을 감싸고 있다. 이는 율법이다. 명령이다.”
지난 6월27일, 한여름 더위 속의 오키나와를 찾았다. <엔에이치케이>(NHK) 텔레비전의 ‘마음의 시대’라는 프로에 나갈 사키마(佐喜眞) 미술관 관장과의 대담을 위한 방문이었다. 이 미술관은 미국 해병대 후텐마기지 옆에 있다. 아니, 옆에 있다기보다 그 절반 이상이 기지 터 안에 머리를 들이밀듯 들어가 있다.

미술관 바깥마당에는 류큐의 민간신앙에 따른 거북 등딱지 모양의 거대한 묘가 있다. 270년 전부터 그곳에 자리잡은 사키마 일족 대대로 내려온 묘다. 사키마 미치오 관장은 제11대 종손이다. 2차대전 뒤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은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고 기지를 건설했다. 사키마 일족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미군에게 점거당했다. 사키마 관장은 미군한테서 땅 일부를 돌려받아 1994년에 이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곳에는 마루키 이리·도시 부부의 <오키나와 전도(戰圖)>가 상설 전시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일 양군이 격렬한 지상전을 벌일 때 오키나와 주민이 자국인 일본(야마토) 군대로부터 ‘집단자결’을 강요받고 학살당한 모습을 그린 대작이다.

<오키나와 전도> 외에 사키마 미술관의 특징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독일 여성 미술가 케테 콜비츠 컬렉션이다. 판화를 중심으로 한 59점의 컬렉션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북서울미술관에서 올해 2월3일부터 4월19일까지 처음으로 본격적인 ‘케테 콜비츠전’이 열렸는데, 이는 사키마 미술관으로부터 작품을 대여받아 성사될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독일 여성 미술가의 작품이 일본 도쿄나 교토가 아니라 오키나와에 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 컬렉션은 중국이나 한국에 대출돼 평화를 바라는 동아시아 민중에게 공유되고 있다.

내가 케테 콜비츠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대학을 나온 지 2년째 되던 1976년, 교토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독일 리얼리즘 1919~1933’전에서였다.

그때 <카를 리프크네히트 추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아름다움이나 위안보다는 직접적인 고통을 느꼈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세계는 지나간 것, 외국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한국은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당시 우리는 그 작품에서 콜비츠가 묘사한 것처럼, 정치탄압 희생자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니 제대로 조문조차 할 수 없었다.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
그 뒤 동서독이 통일된 해에 대규모 콜비츠 회고전이 독일 전국을 순회했다. 나는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이 회고전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그림)이다. 사키마 관장도 젊은 시절 긴자의 화랑에서 이 작품을 보고 “혼을 빼앗겼던” 게 미술 컬렉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할머니도 포함해서 그런 어머니들 모습을 오키나와 도처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전쟁, 기아,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들과 비탄에 빠진 어머니. 어머니의 모습은 흡사 아들을 잡아먹는 악귀처럼 보인다. 정말 비탄에 빠진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건 자식들의 출옥을 학수고대하다 원통하게 죽어가야 했던 내 어머니의 초상이었다. 한국과 전세계에는 이런 비탄을 강요당한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을까.

콜비츠는 1867년 7월, 프로이센 동부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초기 작품 <직공>은 하웁트만의 희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1844년 슐레지엔(실레지아) 지방에서 일어난 직공들 봉기는 ‘독일 최초의 노동자 폭동’이었으나 프로이센 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다. 1898년에 베를린 미술대전에서 공개된 이 작품은 그 급진적인 주제 때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사위원회는 금상을 주려 했으나 황제가 그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직공>에 이어 콜비츠는 16세기 독일 농민전쟁을 테마로 한 <농민전쟁> 연작을 제작했다.

1918년, 오래 끌며 엄청난 희생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독일혁명이 일어나 각지에서 노농평의회(레테)가 결성됐다.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해 사회애국주의와 싸워 온 독일공산당 지도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사회민주당의 구스타프 노스케가 이끄는 ‘의용군’(프라이코어)의 손에 참살당했다. 사회민주당 지지자였던 콜비츠는 리프크네히트와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지만 유족한테서 데스마스크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1933년에 나치당이 정권을 탈취한 뒤 콜비츠는 온갖 압박 속에 예술아카데미에서 추방당했다. 1942년에는 2차대전에 종군한 손자 페터도 잃었다. 늙은 콜비츠는 강제수용소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생각하며 만년을 보내다가 1945년 4월22일 78살에 세상을 떠났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8일 전이었다.

중국의 신흥판화(목판) 운동을 이끈 루쉰은 만년에 <케테 콜비츠 판화선집>을 상하이에서 간행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루쉰은 1931년에 출간된 잡지 <북두>에서 콜비츠의 연작 <전쟁> 중 <희생>이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1936년에 루쉰이 쓴 ‘심야에 쓰다’는 국민당 백색테러로 암살당한 젊은 문학자 러우스를 추모하는 글이다. “두 눈을 실명한 그의 어머니만은 틀림없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변함없이 상하이에서 번역과 교정 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우연히 독일 서점 목록에서 이 <희생>을 발견하고 서둘러 이것을 <북두>에 투고했다. 나는 이를 무언의 기념으로 삼았다.”

1936년 10월19일, 루쉰은 숨을 거두었다. 그는 그해 4월에 일본어로 쓴 글 ‘나는 사람을 속이고 싶다’ 말미에 “죽음을 앞두고, 피로써 개인적 예감을 써서 예로 삼고자 한다”고 썼다. 그 예감대로 그다음 해부터 중국 본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다.

전후 일본에는 진지한 반성과 더불어 재출발을 모색하는 사상적 시도들도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역사학자 이시모다 쇼의 <역사와 민족의 발견>(1952)을 들 수 있다. 이 책에 딸린 케이스와 첫 페이지에는 콜비츠의 작품 <희생>이 실려 있다.

지금 일본에서 이시모다 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베 신조 정권은 지금 불법적인 ‘헌법 해석’을 통해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 법 개정이 필요한 근거로 정권이 상투적으로 거론하는 것 중 하나가 ‘한반도(조선반도) 유사’ 사태 상정이다. 즉 일장기를 내건 일본군이 또다시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고 조선민족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걸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기지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 사람들도 심대한 희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지 반대운동은 오키나와인들 자신은 물론 한국인들, 나아가 동아시아 민중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74살의 콜비츠는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를 제작했다. 그 자신의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녀(늙은 여인)는 자식들을 자신의 외투 속에 품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팔을 활짝 펴 소년들을 감싸고 있다.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 요구는 <두번 다시 전쟁을 해선 안 된다>와 마찬가지로, 막연히 그리는 바람이 아니라 율법이다. 명령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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