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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설탕

등록 2015-08-03 18:29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사자성어로 하면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여기에서 고(苦)라는 글자에는 괴로움이라는 뜻과 쓴맛이라는 뜻이 아울러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감(甘)은 단맛이면서 쾌락이자 행복이다. 단맛은 맛 중의 으뜸이며, 행복한 삶이란 식사 때마다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물질 중에 단맛을 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과일들조차도 근래 개량 품종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떫은맛과 신맛 사이에 단맛을 조금 숨겨두는 정도였다. 사실 몇몇 곤충을 제외하면 인간만큼 단맛을 밝히는 동물은 없다. 인간이 벌을 착취하여 얻은 꿀은, 수천년 어쩌면 수만년 동안 지배자의 권위를 장식하는 음식으로서 영예를 누렸다.

설탕은 꿀맛보다 더 순수한 단맛을, 꿀보다 더 쉽게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낳은 발명품이다. 기원전 327년 인도를 침략한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사령관 네아르코스는 꿀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를 보았다. 사탕수수는 이후 수백년에 걸쳐 중국, 서아시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흑인노예의 쓰디쓴 고통이 유럽인 식탁의 단맛으로 전환되는 극단의 시대가 열렸다. 1902년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도착한 곳도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우리나라에 설탕이 들어온 것은 개항 이전이었고 20세기 벽두에는 ‘설탕옥’까지 생겼으나 그 뒤로도 오랫동안 설탕은 함부로 쓸 수 없는 식재료였다. 1950년대 원조물자를 기반으로 제면, 제분, 제당의 ‘삼백산업’이 급성장한 뒤에야, 설탕은 비로소 대중적인 식재료가 되었다.

우리말에서 맛은 통증과 연결된다. 쓴맛은 쓰라림, 신맛은 시림, 떫은맛은 따가움, 짠맛은 쥐어짜는 아픔, 단맛은 속이 달아오르는 아픔에 각각 대응한다. 생때같은 자식 억울하게 잃은 부모의 애달픈 마음에 둔감한 사람이 많아진 것도, 단맛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모른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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