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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합천, 한국의 히로시마 / 권혁철

등록 2015-08-04 23:36

경남 합천 하면, 뭐가 생각날까?

아마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몇몇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 고향이나 합천댐을 이야기할 것이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

합천과 1945년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먼저 합천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합천은 산골이다. 서·남·북쪽에 가야산·매화산·비봉산·두무산·오도산·황매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있다. 예전에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먹고살기가 팍팍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홍수와 콜레라가 합천을 덮쳤다. 지주는 소작농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소작료를 요구했다. 1922년 당시 합천 농업인구(1만9575명)의 82%(1만7128명)가 소작인이었다. 재해와 전염병, 지주의 횡포에 시달린 합천 소작농들은 고향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히로시마로 갔다. 무기 만드는 공장이 밀집해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944년 일제의 징용령으로 합천 사람 3360명이 일본 등으로 끌려갔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미군 폭격기가 히로시마 9600m 상공에서 원자폭탄(원폭)을 떨궜다. 미국은 사흘 뒤인 8월9일 나가사키에도 원폭을 투하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70만여명이 원폭의 방사능에 노출돼 23만여명이 숨졌다.

우리는 미국의 원폭 투하가 일제의 항전 의지를 말살시켜 항복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원폭이 8·15 광복을 앞당겼고, 원폭에 숨진 일본 사람들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업보라고 여긴다.

하지만 원폭은 일본 사람만 겨냥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번째 원폭 피해 국가다. 각종 연구를 보면,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조선인 7만여명이 피폭돼, 4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

히로시마의 조선인 피폭자 가운데 다수가 합천 출신이다. 광복 이후 이들이 합천으로 돌아오고 2·3세들이 태어나면서 합천군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됐다. 묵은 통계이긴 하지만 1974년 원폭피해자원호협회 합천지부가 벌인 합천군 피폭자 실태조사를 보면, 합천 지역 피폭 생존자는 3867명이었다. 피폭자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각종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인 피폭자는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 일본은 침략전쟁 책임을 덮으려고 ‘원폭 피해자’임을 자처하면서 일본인 피폭자만 돌본다. ‘혈맹’ 미국에 원폭을 투하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국내 피폭자에게 관심이 없다. 올해로 원폭 투하 70년이지만 국내 피폭자의 피해 실태는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정부가 제대로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없다.

정부가 대책을 세워주기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순수 민간의 힘으로 2010년 3월 국내 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이자 피폭2세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이 문을 열었다. 합천 평화의 집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6일)을 하루 앞둔 5일 ‘원폭피해자,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합천 곳곳에서 비핵·평화대회를 연다. 이 대회는 2012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피폭자의 개인적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대회가 열리는 합천까지 가기 어려우면 온라인에 인증샷으로 동참할 수 있다. 먼저 종이에 ‘나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기억합니다’를 적거나 출력한다. 이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등록한다. 등록 장소는 캠페인 페이스북(www.facebook.com/remember194508) 참조.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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