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휴가 기간에 그동안 약 1400만명이 이미 봤다는 영화인 <국제시장>을 보게 됐다.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극장을 찾을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볼 사람들은 다 본 뒤에 뒤늦게 봤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이에 대한 평가 기사에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했는데, 영화를 볼 때 그다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굳이 찾는다면 주인공 부부가 말싸움을 하다가 태극기 하강식에 집중하던 모습이나 남자 주인공이 독일 파견 광부에 자원할 때 투철한 애국심을 선보여 합격하는 장면 정도랄까? 역사적인 상황으로 보면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를 파견하던 것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도록 결정한 것이 다소 긍정적으로 그렸다는 점 정도가 굳이 꼽아내라면 꼽을 정도였다.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가수 남진이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잠시 등장하는 것도 재밌게 봤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베트남에 사업하러 간 주인공이 부인에게 쓴 편지였다. 요약하자면 자신과 부인이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그리고 파독 광부·간호사 등과 같이 힘든 역사를 자신들이 겪고 자신의 다음 세대가 경험하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세대는 당장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나라가 잘살게 하기 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은 뒷전에 두고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는 지금에 와서 자신의 아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고 고집불통인 노인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한국전쟁 중 구두닦이를 하면서 미군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던 두 소년은 숱한 사건을 거치면서 다행히 한 일가를 잘 이뤘고 나름 노년층 부자가 됐다. 하지만 현재 노인세대 가운데 이들처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같은 역사를 겪은 많은 노인들 가운데 절반은 실제로는 빈곤층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약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해방 또는 한국전쟁 뒤 출발선은 비슷했고 같은 역사 공간에서 살았지만 지금 소수의 어떤 이는 재벌이 됐고, 대다수 어떤 이들은 빈곤층의 나락에 빠져 있는 것이다.
휴가 기간에 일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복지 확대는 지금의 빈곤층, 특히 노인 빈곤층의 젊었을 적 고생을 보상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 확대 정책이 나라가 베풀어주는 시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1960~70년대 경제발전을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려 지금은 많이 아프고 가난할 수 있지만, 그 덕분에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으면 이들의 노후는 복지 확대로 나라가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태도가 있어야 우리 사회가 이들의 젊은 날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마침 휴가 기간에 새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내정됐다. 지난 두달여 동안 많은 국민을 겁에 떨게 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같은 감염병이 유행하지 않도록 의료체계를 잘 정비하라는 의미인지 의사 출신이 후보자가 됐다. 장관 후보자는 의업을 했던 거의 모든 기간을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환자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 것으로 본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의료정책도 꼼꼼하게 잘 챙길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한 보건복지 정책을 확대해주었으면 한다. 이 정책들이 당장 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대상자들이 지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면, 돈벌이보다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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