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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대학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 김재호

등록 2015-08-24 18:31

부산대 교수회 회장으로 한여름 텐트 아래 12일 동안 철야 단식농성을 했다. 부산대의 직선제/간선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결국 단식 12일 만에 응급실로 옮겨져 병원에서 같은 대학 고현철 교수의 투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수회와 대학본부가 직선제 추진에 합의를 이루었다. 부산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왜 교수가 농성을 하고, 투신까지 하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인은 유서에서 우리 사회가 “무디어졌다”고 한탄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부산대의 갈등은 직선제 수호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총장이 교육부가 강제한 ‘로또식 간선제’를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총장은 투표를 통해서 총장선출방식을 결정하겠다는 약속도, 올해 5월말까지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약속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나는 직선제 쟁취를 위한 교수회의 투쟁을 진리와 거짓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단식에 돌입했다. 진리탐구의 전당인 대학에서 거짓이 용인된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산대 교수회와 총장 사이의 갈등 뒤에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을 억압해온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있다. 부산대 교수회의 싸움은 대학의 자율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단지, 총장은 교육부의 대리인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교육부는 직선제의 폐단을 빌미 삼아 국립대학교에 재정 압박을 무기로 ‘로또식 간선제’를 강요했다. 39개 국립대학교가 모두 굴복했다. 40개 국립대 총장들 모두가 교육부의 잘못을 지적해보지도 못했고, 교수들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부산대는 대학의 자율과 교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전쟁터였다. 고현철 교수의 유서에는 부산대가 무너지면 대학의 자율과 민주주의가 다 무너지고 만다는 절박함이 진하게 묻어 있다.

권력의 시녀가 된 대학은 사회에 봉사할 수 없다. 대학은 진리 추구를 통해서 시대적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과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부가 강제하는 지금의 ‘로또식 간선제’ 아래서는 권력의 뜻에 충실한 총장이 등장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대학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잘못된 해답을 제시한다.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사회적 갈등, 인구 감소와 고령화, 공교육 몰락, 사교육 광풍, 과도한 교육비, 청년실업, 서울과 지역의 불균형 성장,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의 부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리, 거짓과 그것을 용납하는 문화 등. 이 모든 문제에 대학이 답해야 한다. 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가? 교육부가 대학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이 권력에 예속되면 사회의 암흑기였다.

고현철 교수의 희생은 부산대인과 전국의 대학교수들을 깨우쳤다. 불이익을 주겠다는 교육부의 경고를 무릅쓰고, 부산대는 총장직선제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8월20일 전국의 9개 거점 국립대 교수회는 직선제를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고, 전국교수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31개 국공립대 교수연합회가 여기에 동참했고, 전국 7개 교수단체(거국련, 국교련, 사교련, 민교협, 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비정규교수노조)는 대학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을 부정해온 지금까지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시정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을 보장하고, 존중하며 스스로 개혁하게 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정답이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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