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오?’ 박근혜 대통령이 윤성규 환경부 장관에게 물었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 ‘상수원 보호구역에 떡 공장을 짓게 해 달라’는 민원을 받고, 윤 장관이 ‘법률 개정 등의 절차를 통해 내년까지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질문을 한 것이다. 환경부 장관은 머뭇거리다가 해 넘기기 전에 방법을 찾겠다고 대답을 고쳤다. 그리고 환경부는 국회의 의결이 필요한 법률 개정을 피해,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고쳐 상수원 상류 지역에 떡·빵·커피·면류 등의 제조업 공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대통령의 권능을 보여준 이 한 장면은 환경부의 위상과 환경장관의 줏대를 확인해준 역사적 광경으로 남았다. 또한 가장 강력한 환경 규제의 하나였던 상수원 보호규정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공장과 시설을 허가해 달라는 민원이 폭풍처럼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정부조직법에서 ‘자연환경의 보전과 생활환경의 보호’를 역할로 규정받은 환경부가 제 역할을 거꾸로 한 경우는 이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에서 환경영향평가를 3개월 만에 통과시켜주며 들러리를 서 준 것이다. 22조원의 사업 규모에 어울리도록 정상적으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사계절 종합 조사 등을 진행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 장관이었던 이만의씨는 국정감사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호언하며 밀어붙였다. 그 결과 3년 만에 22조짜리 토건 공사가 폭주할 수 있었고, 3년이 지난 2015년 전국은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지금 환경부에서 누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녹조 대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뭉개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새만금 사업이 91년 시작해 2030년을 목표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환경부의 무책임을 알 만하다.
이제 산으로 간 4대강 사업,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이 다시 환경부 앞에 떨어졌다. 하반기 중 착공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둔 환경부는 또다시 총대를 멜 기세다.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생물권보호지역이고, 천연보호구역이자 백두대간보호구역인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도록 땅을 고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절대 보전이 필요한 국립공원을 훼손하고, 산양을 비롯한 10여종의 멸종위기종을 위험에 빠뜨리는 케이블카 사업의 승인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케이블카를 추진하겠다며 대기하고 있는 지리산, 신불산, 북한산 등의 운명도 함께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이미 산 정상에 호텔과 레스토랑을 건설하는 조감도까지 발표하고, 국회에 산지이용법의 개정까지 발의해 놓은 상태다. 4대강 사업이 산으로 가 국립공원을 무너뜨린다면, 다시 도시와 전국토로 향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28일 여는 국립공원위원회가 만약 설악산 케이블카를 승인한다면, 이는 전국적인 난개발을 초래하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환경부에 기대하는 바는 거창한 게 아니다. 자신들이 발표한 삭도 건설 가이드라인, ‘주요 봉우리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산하의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설악산 방문자보다도 더 많은 케이블카 탑승자 추계 등을 통해 경제성을 조작’하는 따위의 일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개발만 주장하는 대통령을 모시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판단을 포기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단순히 빨랫줄 하나 거는 게 아니다. 막개발 난개발의 빗장을 열어 국립공원, 나아가 국토를 먹이로 던져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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