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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원자폭탄

등록 2015-08-24 18:44

동양 종교들의 우주관에는 ‘조화의 무궁’이나 ‘윤회의 반복’이 있을 뿐 종말은 없다. ‘말세’는 한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시간개념이지 세계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공간개념이 아니다. 여기에서 역사는 시작이 있을 뿐 끝은 없다.

반면 1000년 이상 서구 세계를 지배한 기독교는 역사의 시작과 종말을 분명히 제시했다. 인류 역사는 천지창조의 마지막날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그날까지만 전개된다. 옛 동양에서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할지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으나,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개인의 삶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심판의 날을 기다렸으며, 예언자들은 그날이 언제일지, 그 방식은 무엇일지에 대해 응답했다.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든 불, 노아 시대의 땅을 덮어버린 물은 그 자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1945년 8월6일 오전 9시15분, 미군 B29 전폭기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6만여명이 즉사했으며,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졌다. 버섯 모양 구름이 치솟았다가 재로 변해 떨어진 지역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서서히 죽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유전자를 통해 대를 이어 전해졌다. 사흘 뒤, 또 하나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져 3만6천여명이 즉사했다.

원자폭탄을 경험한 뒤, 최후의 심판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인류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물건으로 원자폭탄을 첫 순위에 꼽았다. 소행성 충돌, 제2빙하기, 외계인 침공 같은 것들은 아직 상상 안에 있으나, 원자폭탄은 현실에 있다. 대다수 현대인이 걱정하는 ‘심판의 그날’은 핵전쟁이 일어나는 날이다. 루이스 멈퍼드는 ‘근대를 연 것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라고 했지만, 현대를 연 것은 원자폭탄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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