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함지뢰 폭발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어 가던 지난달 중순 7박8일 일정으로 북-중 접경지대를 다녀왔다. 3년 전에도 그곳을 다녀왔는데, 그때는 김정일 사후 북한의 형편을 강 건너에서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5·24 조치와 유엔 대북제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5·24 조치 이후 남북 교류협력과 대북지원은 거의 중단됐다. 2007년 4397억원이던 대북 인도적 지원은 2014년 195억원으로 감소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2094호)이 발효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도 완전 중단됐다. 그런데도 북한의 성장률은 2009년 -0.9%, 2010년 -0.5%에서 5·24 조치 후인 2011년 0.8%를 기록해 완만한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미 의회조사국(CRS)도 2015년 초부터 북한이 약간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수치들을 머리에 넣고 다롄 공항에서 단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황금평 특구를 찾았다. 3년 전엔 없던 육중한 철문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고, 그 안쪽의 컨테이너 박스들은 녹슬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엔 없던 6층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감시원에게 물었더니 중국의 투자로 건설되는 황금평 북-중 국경사무소 신사옥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북한을 가까이 보려고 압록강 하류부터 백두산을 넘어 두만강 하류까지, 가능한 한 강을 따라 이동했다. 이번 답사에서 3년 동안의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걸려 있던 김씨 왕조 우상화 입간판들은 거의 눈에 안 띄었다. 그 대신 ‘산림애호’로 바뀌었다.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휙 날아갈 것 같던 회색 기와지붕을 붉고 푸른 양철지붕으로 개량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수풍댐 아래 쓰러질 듯한 공장 건물 굴뚝에서도 연기가 올라왔다. 들판에는 3년 전에 어쩌다 가끔 한두 마리 보이던 소들이 꽤나 늘었다. 뙈기밭은 여전했으나, 작물이 경작되고 있는지 제법 푸르름을 띠고 있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강 건너 북한 마을과 주민들 모습은 3년 전에 비해 넉넉해 보였다.
당일 코스 신의주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아침 일찍부터 압록강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단둥~신의주, 훈춘~원정을 잇는 다리 위로는 컨테이너화물차와 레미콘차들이 줄을 지어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북쪽 어디선가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모양이다. 우리 가이드도 북-중 중앙정부 간 관계는 약간 저조하지만 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의 대북 투자와 교역은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미 의회조사국도 “북-중 국경지역에서 상업과 교역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평양 당국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접경지대 주민의 삶이 3년 전에 비해 나아졌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북한이 대남·대외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겠다면서 시작된 5·24 조치와 유엔 대북제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남한과 유엔의 대북제재에도 접경지대의 사정이 나빠지지 않고 오히려 좋아졌다면, 그리고 북한의 정책도 바뀌지 않았다면 이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마침 지난 8월25일 발표된 남북 공동보도문에는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6항)는 조항이 있다. 1항의 합의에 따라 조만간 열릴 남북 당국회담에서는 유엔 대북제재 해제는 차후의 문제로 남겨두더라도, 이미 허울만 남은 5·24 조치 해제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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